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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빌보드 기적의 날, 다시 연습실로

한승주 논설위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데뷔, 방송 출연 어렵자 유튜브 공략… 해외 팬층까지 두터워진 계기
코로나로 해외투어 무산되자 온라인 콘서트에 새 앨범 작업 첫 영어곡 도전해 빌보드 1위
연습 또 연습, 진정성 갖춰… 코로나 시국에 위로와 희망, 모두 BTS처럼 꿈꾸고 이루길


그들은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2013년 데뷔 초, 그룹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조금씩 알아보는 이들이 생겼다. 상상하고 바라왔던 일들이 이뤄질 때마다 행복했다. 그저 음악과 춤이 좋아 시작했는데 그들의 진심이 세상에 통했다. 마침내 그들이 오른 곳은 뮤지션들의 꿈인 미국 빌보드의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위. 정상이다. 이제 그들 위에 아무도 없다. 1위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듯 2주 연속 1위 기록도 세웠다. 빌보드 역사상 발표와 동시에 첫 주 1위를 차지하고, 2주 연속 정상을 지킨 곡은 20곡뿐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1위를 하던 날, 약 690만명이 가입한 팬덤 ‘아미(ARMY)’의 온라인 공간 ‘위버스’가 들썩였다. 나도 BTS처럼 꿈꾸고 목표를 이루고 싶다, 나는 과연 BTS처럼 노력했던가, BTS는 이 시간에도 일하고 있겠지, 나도 열심히 해야지….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로 우울하고, 정치도 마뜩잖고 경제도 갑갑한 상황에서 BTS는 모처럼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위로와 희망을 넘어 잊고 있던 꿈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BTS 7명은 무대에서는 한없이 끼가 넘치지만 일상에서는 주목받으면 귀가 빨개지고,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하는 청년들이다. 그 이유를 팬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잘나가지 않았고, ‘n포 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처럼 밑바닥에서부터 힘겹게 올라왔다. 그러기에 자신들이 선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책임감 있는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불리한 상황을 도리어 돌파구나 장점으로 만들어왔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라 데뷔 초에는 방송 출연도 힘들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를 공략했다. 음악은 물론 일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팬들이 이를 재가공하는 것을 즐기며 존재감을 알렸다. 덕분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고, 해외 팬층까지 두터워지는 계기가 됐다. 첫 단독 콘서트 관객은 2000여명이었지만, 점점 더 큰 무대에서 팬들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가장 성공한 날, 가장 기쁜 날이었다. 미국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콘서트 전단지를 직접 돌리며 “두 유 노 케이팝?”이라고 외치던 게 2014년. 몇 년 후 훌쩍 성장해 몇 만석 규모의 해외 스타디움 투어를 하고,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를 거쳐 마침내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다. 데뷔 7년 만에 빌보드 두 부문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아시아 아티스트가 됐다.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줄줄이 잡혀있던 해외 투어가 무산됐을 때, 그들은 한참을 달리다가 넘어진 기분이라고 했다. 허무하게 시간만 간다고 초조해하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할 일을 했다. 비정규 음반인 믹스 테이프를 만들고, 온라인 콘서트를 하고, 정규 앨범을 준비했다. 쉼 없이 달려오던 중 신나고 경쾌한 곡을 만났다. 암울한 세상에 위로가 될 것 같아 싱글 음원으로 발표한 영어 곡이 바로 ‘다이너마이트’다.

BTS의 가장 큰 조력자는 ‘아미’다. 이들은 BTS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아티스트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를 진정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노래와 춤에 진심인 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연습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말한다. 우리도 7년 전 상경했을 때 꾀죄죄하고 별거 없는 소년들이었다고. 우리도 했는데 여러분이 못할 게 뭐냐고. 우리가 너무 높이 올라가서 멀어진 것 같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빌보드 1위 가수가 된 날, 이들은 “새벽에 1위를 확인하고는 아침 7시까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며 눈이 부은 얼굴로 실시간 온라인 소통 채널인 브이 라이브를 켰다. “태어나길 잘했다.” “핫 100 순위 사진을 내 묘비에 조각해 놓겠다”며 한껏 들떴던 BTS는 말했다. 이제 하던 걸 하러 가겠다고. 누군가 오늘 같은 날 하루 쉬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슬쩍 말 꺼냈지만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거 끝나면 바로 또 연습하러 갑니다.” K팝의 역사를 새로 쓴 날, 빌보드 1위 가수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연습실이었다. 고향에서 빈손으로 올라와 지하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 하루 15시간씩 연습하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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