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서에서 ‘트럼프 각하’… “판타지 영화 같은 회담”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언론인 밥 우드워드, 신간 ‘격노’서 밝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사법부 인사 관련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태풍과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 미국 언론들은 이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표현을 써서 보낸 친서를 일부 공개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상대방을 ‘각하(Your Excellency)’로 존칭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판타지 영화’ ‘마법의 힘’ 등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성격과 성향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친서에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 WP 부편집인의 신간 ‘격노(Rage)’에 담긴 내용을 입수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18차례 인터뷰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우드워드는 북·미 정상 간 친서 27통을 확보했으며, 이 중 25통은 보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책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각하로 지칭하면서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나 자신과 각하의 또 다른 역사적 회담을 (희망한다)”고 적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을 회고하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에서 각하의 손을 굳게 잡았던 역사적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깊고 특별한 우정이 어떻게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쓰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선대와 비교해 격식과 의전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평소 성향이 친서에도 묻어난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 완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외교적 행위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장화법을 자주 사용하고 쇼맨십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해 친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이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해 과장된 표현을 친서에 많이 넣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에서도 과거와 다른 파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자기과시적 성향도 드러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어떻게 살해했는지를 포함해 “(김 위원장이) 모든 것을 내게 말해준다”고 우드워드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 과시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었는데 30대인 김 위원장은 그런 모습을 더욱 드러내는 것 같다”며 “자신이 체제를 장악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장성택을 처형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을 일반에 공개한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로 비칠 수 있다. 북한이 우드워드 신간 출간 이후 크게 반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최고존엄이 미국에 고개를 숙인 모습이 친서를 통해 공개된 만큼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 같다”며 “이 정보가 북한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북한 당국이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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