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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우울한 음식 배달의 민족

황교익 칼럼니스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 아닙니까.”

여기서 배달이란 두 종류의 배달을 뜻한다. 상고시대 한민족의 나라였던 배달과, 음식 배달의 배달이다. 음식 배달 사업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업체의 이름이 ‘배달의민족’이다. 이 상호를 대할 때면 나는 철가방을 들고 있는 단군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말장난이 기묘하다.

상고사에 등장하는 배달과는 무관하게, 한국인이 ‘음식 배달의 민족’인 것은 맞다. 외국에도 음식 배달이 있기는 하나 한국처럼 크게 발달해 있지 않다. 음식 배달의 번창은 확실히 한국적 현상이다.

인간은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에 역사적 맥락을 붙이려는 습성이 있다. 한국에서 번창하는 음식 배달이 한국적 전통 안에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들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장 흔히 인용되는 것이 효종갱이다. 1925년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광주 성내 사람들이 잘 끓인다. (줄임)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에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

황윤석의 ‘이재난고’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먹었다”는 글도 인용된다. 1768년 7월의 일이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순조가 달구경을 하다가 신하에게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는 글이 등장한다고 한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음식 배달 기록이 넘쳐난다. 특히 냉면 배달이 번창해 냉면 배달 종사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록만 놓고 보면 “아, 한국인은 원래 음식을 배달해 먹는 것을 즐기는 습성이 있구나” 하게 된다. 한 단계 깊이 나아가는 질문이 필요하다. “왜 배달을 해서 먹지? 식당에 가서 먹을 수도 있는데. 냉면은 면이 불어 맛도 없어지는데.”

우리는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당시 사람들의 감성까지 엮어서 생각하는 버릇을 몸에 붙이지 못했다. 점수 따기를 위한 단편적 사실 암기 공부만 한 탓이다.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것이 인간들의 기호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조선은 상업을 천시했다. 사농공상. 상업은 사회적으로 최말단에 드는 직종이었다. 특히 음식 장사는 인간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 이런 관념이 얼마나 강했는지 1970년대만 하더라도 누가 식당을 차렸다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할 게 없으면 음식 장사를 하누” 하며 한마디씩 했다.

조선시대 사람으로 빙의를 해보자. 당신은 양반이다. 양반 체면에 그 천한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음식을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식당에 ‘양반 아닌 것들’이 와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데, 서로 얼굴을 보며 수저를 들 수가 있겠는가.

조선말에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스스로 양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70%가 넘었다. 다들 고개를 치켜들고 “에헴” 하면서 다녔다. 일제강점기라고 다르지 않았다. 양반 행세를 하려니 음식은 배달해서 먹어야 했다.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 배달 관습은 조선의 전근대적 직업관과 신분제도 등의 영향에 의해 발생했을 수 있다고 추론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배달해 먹으면 편하기는 하다. 요리와 설거지의 번거로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화로 말을 섞을 일도 없다. 앱으로 다 된다. 딩동~ 소리 듣고 문을 열면 음식만 놓여 있다. 라이더는 번개 같다.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음식과 돈만 오간다. 편하기는 하다. 조선의 양반처럼 편하기는 하다. 코로나19로 죽겠다는 식당 주인 얼굴 안 봐서 편하고, 라이더의 몸에서 나는 땀내를 맡지 않아서 편하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은 짐작이 되나 그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아 한숨 두어 번으로 고민을 끝내니 편하다. 지독하게 편하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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