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드라마는 시대다] ‘막장 드라마’에 유혹당한 우리, 피해자이자 협력자였다

<6> ‘아내의 유혹’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 지금보다 나은 현실을 갈망하는 여자들의 소망과 꿈을 담은 드라마가 되겠다”고 기획 의도를 밝힌 ‘아내의 유혹’(SBS, 2008년 11월~2009년 5월 129부작)은 어떻게 막장 드라마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던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고부 갈등 등 자극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담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꼽힌다. 방송사 제공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혼외자, 고부갈등, 가정 폭력, 도박, 납치, 폭행, 감금, 살인, 공금횡령, 성폭행, 신분세탁, 공문서위조, 불법 주거침입, 음주운전, 기물파손, 근친혼, 스토킹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사건들이 사랑과 믿음이 충만해야 할 가족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한 사람들은 짓밟고 짓밟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법도 윤리도 없고 반성도 뉘우침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왜 유혹당했을까. 평균 시청률 26.9%, 최고 시청률 37.5%(AGB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던 ‘아내의 유혹’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궤도를 이탈한 욕망을 쫓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발표되는데, ‘아내의 유혹’이 시작되었던 2008년에는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다’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종영된 2009년에는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다’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이 각각 선정되었다. 당시 국보 1호인 숭례문은 화염에 휩싸여 무너졌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촛불집회는 봄에서 여름으로 뜨겁게 이어졌다.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46.1%의 투표율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금융위기는 무섭게 다가왔다. 세상은 ‘묻지마’의 늪에 빠져들면서 불황과 위기가 깊어질수록 지금을 바로 보려는 차가운 시선과 내일을 향한 고민을 내려놓았다. 승자독식의 세상은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어긋난 욕망을 당연시했고, 나의 상처에만 집중한 매일매일은 복수를 정당화시켰다. 그리고 최소한의 도덕성과 개연성을 갖추지 않은 드라마들이 인기 가도를 달렸다.

‘아내의 유혹’이 대단한 화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인어아가씨’(MBC), ‘왕꽃선녀님’(MBC), ‘너는 내 운명’(KBS), ‘그 여자가 무서워’(SBS) 등을 통해 일일드라마가 자극적이 되어 갔지만 평일 저녁 7시대 드라마는 여전히 저녁 식탁의 배경 같은 존재였다. 며칠 건너뛰어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을 만큼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사랑과 배신이 오해와 불신을 거쳐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되는 패턴을 갖고 있었다. ‘아내의 유혹’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와 기이하기까지 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상상 이상의 사건들은 예상을 벗어났다.

오빠 친구인 정교빈(변우민)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하고 결혼까지 한 구은재(장서희)는 남편의 외도와 시어머니의 비상식적 구박을 견디다 결국 바람난 교빈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우여곡절 끝에 민소희로 신분 세탁한 그녀는 몇 달 만에 서너 개의 외국어에 능숙해졌고, 뷰티샵 실습 몇 번으로 VVIP 고객을 만족시킬 만큼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다. 해 본 적 없는 수영은 단기간에 선수의 자태를 갖췄고, 춤도 그러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신애리(김서형)를 향해 거침없이 복수의 칼을 휘둘렀다.

애리는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지 친구네 집에서 성장했다. 그 집이 은재네다. 은재와는 친자매같이 자랐고, 은재 오빠와는 연인사이였고 그러는 동안 은재 남편과 내연의 관계가 되었다. 처세술에 강했고 두뇌 회전도 빨랐고 성공에 대한 욕망도 컸다. 부모의 사고 보상금을 은재 부모가 가로챘다는 오해와 눈칫밥 먹으며 성장했다는 서러움은 그녀를 은재의 모든 것을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구은재(장서희·왼쪽)는 눈 옆에 작은 점을 찍고 민소희 행세를 하고, 신애리(김서형)는 시종일관 악을 쓰는 모습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방송사 제공

은재와 애리는 선과 악을 대변하는 인물인 듯 보이지만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은재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소희일 때의 그녀가 상황 판단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것과 정반대다. 은재는 오빠가 사고뭉치이긴 했지만 친정집이 끼니를 걱정할 만큼 극빈하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댁 식구들과 애틋한 가족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녀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았을까. 지혜롭지 못해서다. 반면 “복수할 거야”를 입에 달고 살던 애리는 항상 은재의 것을 탐했다. 프랑스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면 그녀 스스로 성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은재와의 끈을 끊어내지 못한 채 그 주위를 맴돌았다. 현명하지 못했다. 둘 다 딱 호질기의하고 방기곡경한 인물들이었다.

주변 인물들도 만만치 않았다. 교빈은 졸부 아버지 덕분에 안락한 생활을 유지했고 무개념과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엄마 덕분에 개념 없는 일탈을 저질렀다. 상스러운 말버릇에 손에 잡히는 것은 집어던지기 일쑤였던 교빈의 아버지는 첫사랑을 배신하고 그녀의 재산을 갈취했으며 둘 사이에서 낳은 하늘이를 자신의 딸이 아니라 여동생으로 둔갑시켜 함께 살았다. 그 첫사랑이 은재가 신분 세탁했던 소희의 엄마다. 그녀에겐 양아들 건우도 있었는데 법적 남매인 건우와 소희는 결혼과 이혼을 이어갔고, 은재와는 삼각관계로 얽혔다. 심지어 은재 오빠와 하늘이 부부가 되니 몇 명되지 않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본 적 없는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옷매무새와 머리모양새가 달라졌다고 해도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내가 은재가 아니라 소희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부부였고, 식구였던 은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보려 했던 이들에게 은재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욕망에 눈먼 사람들에게 진실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고, 당연한 사실을 두고 아니라고 우기는 뻔뻔함의 극치와 일맥상통했다.

모든 것이 과했다

사랑과 배신, 복수가 막장 드라마를 만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아무리 만들어낸 이야기라도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어찌 된 것이 “정말 저럴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유혹’은 뒤틀린 현실, 무너진 가족, 위계질서의 붕괴 속에서 자기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분노의 감정들을 토해낼 시간이 필요했던 시청자들에겐 깔아놓은 멍석이 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라마를 보며 화내고 욕하다 보면 속이 시원해졌다. 다른 드라마보다 서너 배는 빠르게 진행되니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닌 척 빙빙 돌려대지도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설정이 생략된 ‘그렇다 치고’ 전개법은 개연성을 뛰어넘었다. 구구한 사연을 곱씹어볼 시간을 면제받은 시청자들은 단순해졌고, 곁가지를 쳐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모든 것이 과했고 무엇 하나 중간이 없었던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의 대명사가 되는 데는 미디어 산업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케이블, 위성방송에 이어 IPTV가 서비스를 시작한 2008년, 비지상파 채널은 100여개를 훌쩍 넘어섰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차별점을 만들어낸 tvN 등 비지상파 방송들이 잠룡(潛龍)의 힘을 축적하는 동안 외환위기 이후 다시 몰아닥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지상파방송이었다. ‘수지개선, 감량정책, 비상경영’에 돌입한 지상파는 드라마 편성 축소와 제작비 삭감을 단행했다. 시청률과 자본의 효율성으로만 평가되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근친상간이나 동성애와 같은 금기 소재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했고 존비속 범죄가 횡횡했으며 극성 강한 소재들이 겹겹이 배치되었다. 독인 줄 알면서도 마실 수밖에 없었겠지만 막장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 전성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막장 드라마는 많은 것이 제자리를 이탈했던 오늘의 혼란스러움과 내일을 알 수 없는 막막함과 마른 수건 쥐어짜듯 성과만을 강조했던 현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 없었고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이었던 드라마에 유혹당한 우리는 피해자이자 협력자였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