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연예·스포츠 > 스포츠

[And 스포츠] “패럴림픽 4강신화 꿈꿨는데… 내년을 기약해야죠”

코로나로 멈춘 휠체어농구팀

지금쯤이면 한국 휠체어농구의 역사가 바뀌어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 휠체어농구 대표팀과 실업팀 서울시청의 주장 조승현(38)에게 올해는 농구 인생의 전환점이 될 예정이었다. 지난해 앙숙 일본을 두 차례나 꺾으며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2위로 도쿄패럴림픽 진출을 확정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이런 미래를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패럴림픽을 비롯해 연초부터 예정됐던 국내외 대회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지난달 가까스로 시작된 휠체어농구대전 리그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며 이달 일정이 다음 달로 모두 미뤄졌다. 대표팀과 서울시청을 지휘해온 한사현(52) 감독은 특히 이번 패럴림픽으로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 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실업팀 서울시청과 휠체어농구 대표팀 동료 조승현, 곽준성, 이윤주(왼쪽부터)가 지난 14일 경기도 하남 공원 인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남=최현규 기자

조승현 등 서울시청 선수들은 지난 4월부터 훈련장 성격인 복지시설 서울 광진구 정립회관이 폐쇄돼 팀 훈련조차 할 수 없다. 기숙사 역시 폐쇄된 탓에 서울에 집이 없는 선수들은 각자 고향에 돌아갔다. 대회 기간에 선수들이 훈련을 못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다. 국민일보는 14일 서울시청과 대표팀에서 조승현과 함께 뛰는 이윤주(36) 곽준성(32)을 만났다. 그나마 셋이 모인 것도 지난달 초 일주일간의 대표팀 훈련 뒤 약 5주 만이었다.

마침내 코앞 다가온 숙원, 그러나

대표팀과 서울시청 모두에서 세 선수를 지도하는 한사현 감독에게 이번 패럴림픽은 평생의 숙원이나 다름없었다. 1세대 휠체어농구인으로서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에서 대표팀 선수로 뛰었던 그는 당시 농구인들 중 유일하다시피 현장에 남아 헌신했다. 선수를 은퇴한 뒤에는 직접 휠체어수입업체를 설립해 그 수익으로 선수들을 모집, 휠체어농구 팀을 만들었다. 이는 장애인스포츠 최초의 실업팀인 현 서울시청 구단의 모체가 됐다.

이윤주와 곽준성은 모두 한 감독의 권유로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곽준성은 “사회복지사인 한 감독님의 사모님을 통해 휠체어농구를 접했다”면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거듭된 설득에 결국 공을 잡았다”고 말했다. 한 감독의 지도로 곽준성은 지난해 국제휠체어농구연맹(IWBF) 아시아·오세아니아 챔피언십에서 대회 베스트5에 뽑혔을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했다.

지난해 서울시청을 이끌고 휠체어농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지도자상을 받는 한사현 감독의 모습. 한국휠체어농구연맹 제공

대표팀이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과 세계선수권대회 6위를 차지한 뒤 국내에도 한국휠체어농구연맹이 만들어지고 리그가 생겼다. 한 감독은 2018년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투병하며 지난해 강자 이란·일본 등을 제치고 대표팀을 패럴림픽 지역 예선 2위로 이끌었고, 서울시청에는 5년 만에 휠체어농구대전 우승컵을 안겼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 휠체어농구의 위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처음 맡은 2010년부터 패럴림픽이 열리는 올해 대표팀을 세계 4강에 올려놓겠다고 공언했다. 맞수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패럴림픽 진출을 자동 확정지어 지역 예선 4위만 해도 본선행이 가능했지만, 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당당하게 2위를 따냈다.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6위에 이은 쾌거였다. 한 감독의 호언장담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패럴림픽 본선을 기대케 하는 성적이기도 했다.

한 감독의 선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조승현은 “4~5년 전부터 감독님은 도쿄 패럴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면서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패럴림픽 일정을 마치고 감독 일을 마무리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감독은 현재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해 언론 접촉도 어려운 상태다. 서울시청 김영무 코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감독님이 처음 전화로 ‘나 암이란다’라면서 검사 결과를 알려왔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사실 그때부터 쉬었어야 했지만 평생을 걸어오신 일이라 관두시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로서의 꿈, 휠체어농구계의 꿈

휠체어농구는 일반 농구 못지 않게 거칠고 빠른 경기 템포 덕에 세계적으로 장애인 스포츠 중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더블 드리블만 제외하면 농구의 규칙이나 경기장·골대 규격 등이 그대로 적용되는 덕에 경기가 늘어질 틈이 없다. 워킹 반칙을 판단할 때 걸음 수를 세는 대신 손으로 휠체어를 몇 번 미는지를 따지는 식이다. 이윤주는 “처음 휠체어농구를 시작할 당시 가족들이 경기를 보러와서 넘어지고 부딪히는 등 거친 모습 때문에 하는 걸 말렸다”고 회상했다.

경기에 나서는 팀들은 중증·경증 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도록 장애 정도에 따라 포인트를 나눠 총합 14포인트를 넘지 않도록 한다. 프로농구의 샐러리캡이 선수단 총 연봉을 제한해 팀 간 전력 차가 극심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프로리그도 열린다. 조승현은 “외국 대회에 가보면 유료관중이 체육관마다 꽉꽉 들어차고 구단 상품도 활발하게 판매되는 등 인기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비실업팀인 고양 홀트에서 함께 뛰던 조승현과 이윤주는 2018년 함께 서울시청으로 이적했다. 전 직장이 지금보다 안정되고 수입도 나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한 감독의 지도 아래 서울시청에서 훈련에 전념하며 기량을 다져놓아야 패럴림픽을 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생을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그만큼 이들에게 태극마크를 달고 나설 패럴림픽은 중요하다.

이윤주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태권도 선수를 했으나 군생활 훈련 중 차량이 골짜기로 굴러떨어지며 척추를 크게 다쳤다. 그는 “다치고 나서 운동할 때의 숨이 차는, 그 벅차오름을 다시 경험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휠체어농구를 하며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목표인 국가대표를 휠체어농구로 이룰 수 있었다. 패럴림픽은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조승현은 이번 패럴림픽이 한국 휠체어농구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믿는다. 2006년부터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국제대회 호성적이 휠체어농구계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것을 직접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휠체어농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선수’ 풀 자체가 적었다”면서 “아시안게임 우승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해외 진출 경험이 있는 선수도 생겼고 실업팀도 3개까지 생겼다. 이번 패럴림픽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현은 “선수로서 일반 사람들이 휠체어농구에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지만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프로농구의 인기조차 예전에 비해 시들해진 상황인지라 자연스럽게 휠체어농구로 향하는 시선도 줄어든 탓이다. 다만 그는 “우리 세대에는 어렵겠지만 휠체어농구가 ‘장애인 스포츠’라기보다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축구나 야구 같은 별도의 스포츠 종목으로, 돈 주고 경기장에 와서 열심히 응원할 수 있는 종목으로 여겨진다면 휠체어농구인으로서 뿌듯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남=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