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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다시 자유롭게, 고독하게


‘자유’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내 자유야!”라고 소리치며 막장 행패를 부리거나 “뭐라고 하든 내 표현의 자유를 건드리지 마!”라고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그 자유 말고, 진짜 자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유는 늘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Frei aber Einsam)라는 말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모토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라는 말은 로베르트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했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슈만은 두 제자인 브람스, 알베르트 디트리히와 함께 소나타곡을 만들고, 곡의 표제를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의 초성을 딴 ‘F. A. E’라고 붙였다. 세 작곡가는 악장마다 F, A, E에 해당하는 음을 중요 모티프로 사용하는 멋진 기량도 발휘했다. F. A. E 소나타가 요아힘에게 헌정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요아힘보다는 브람스에게 자유와 고독의 이미지를 헌정했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연모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브람스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사회생활의 팔 할을 프리랜서로 지탱해온 나는 ‘자유롭다’는 한국말이 ‘free’라는 영어가 가진 뜻을 온전히 다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게 좀 아쉽다. 프리랜서들은 통제받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지, 진짜 그랬다가는 국물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자유로움’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뜻을 함께 가진 것은 자유롭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뒷골목에는 종종 고독과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요즘 20대들은 ‘고독’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자주 외롭고 좀처럼 고독하지 않다. 고독은 고요와 단짝이다. 외로움은 고요를 견디지 못한다. 외로움은 옷을 여며도 몸속으로 파고드는 한겨울 칼바람과 같다. 반면 고독은 적당히 데워진 겨울 방바닥 같아서 따스하고 웅숭깊다. 외로움에 민감한 자들은 외롭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기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비틀비틀 걷고 누구든 만나 섣부른 사랑을 속삭이려 한다. 그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려 한다. 고독은 처음부터 채워진 것이어서 아무것도 더하거나 갈구할 필요가 없다.

자유를 원하는 이들은 종종 고독하고 가끔 외로운 것을 견뎌야 한다. 외로운 시간은 나를 옭매고 고독한 시간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고독과 자유는 심장이 하나인 샴쌍둥이와 같다. 이문재 시인은 다시 F. A. E를 떠올리며,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라고 썼다. F. A. E는 브람스나 요아힘, 슈만 같은 예술가나 유난한 자유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고독하지 않은 자유는 방종이고, 자유롭지 않은 고독은 얽매임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은 건 슬픈 일이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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