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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한 사람을 위한 공연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실로 무서운 속도였다. 국지적인 현상이었다면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pandemic)’이라는 용어처럼 이 전염병은 국경을 넘고 사회 곳곳을 침투했다. 마스크를 끼고 손소독제를 바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마스크 품귀 대란도 겪고 비대면 수업에 적응해야만 했다. 공공시설에 발 들이는 일이 불가능한 시기도 있었다. 봄이 오기도 전에 우리는 손발이 묶여버렸다. 그동안 손쉽게 누릴 수 있던 것을 마음먹어도 누리지 못하게 됐다. 생활 속 불편함이 당연해졌다.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관과 소극장이 한산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공연장은 아예 문을 닫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어도 문화·예술과의 거리는 여전했다. 그사이 휴업하거나 폐업하는 동네 책방이 생겨났다. 과연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월에 진행하기로 했던 공연이 다달이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회사원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업무 보고에 익숙해질 동안, 프리랜서는 행사 연기나 취소 통보를 받았다. 기약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많이 보이거나 들리면 그것에 익숙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매일 아침 안경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듯, 외출할 때 마스크를 끼는 게 당연한 의식이 됐다.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도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됐다. 계절이 세 번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겨울에 살고 있었다. 먹고사는 일이 더욱 빠듯해지면서 여가가 없거나 여가가 넘쳐나는 사람만 남았다. 어느 쪽이든 무기력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삶의 중심에 있던 내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 기획자들은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생생한 현장감 대신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동안 공연업계는 기존 영상을 제공하거나 공연 실황을 중계해왔지만, 이는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7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코로나19에 대한 최신 문헌을 바탕으로 방역 예방 조치를 한 뒤 아홉 차례의 ‘이른 열대야’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비대면 접촉을 뜻하는 ‘언택트(untact)’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가치를 현장에서 구현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주말, 싱어송라이터 ‘생각의여름’과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유희경 시인이 기획한 ‘시& 페스타’를 보았다. 열 명의 시인과 여섯 명의 뮤지션이 주말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공들여 준비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 낭독회, 뮤지션과 시인이 협업한 무대, 시 읽기를 극으로 승화시킨 무대, 팟캐스트 녹음 현장, 그리고 시인과 몇몇 독자가 돌아가며 책을 완독하는 현장이 거기 있었다. 무대와 현장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닌데도 나는 귀에 리시버를 꽂고 한껏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집중’은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현장이 주는 희열 중 하나는 누군가와 동시에 공감하고 환호하는 것인데, 집에서 보는 공연은 혼자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게 해주었다. 이틀 동안 나는 함께 흥분하지는 못해도 나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는 법을 익혔다. 문득 한여름에 열리곤 하던 록 페스티벌에 열광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나는 ‘즐김’과 ‘쉼’을 선택할 수 있었다. 듣고 싶은 공연을 취사선택하고 남는 시간을 잔디밭이나 부대시설에서 보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실시간 송출된 이번 공연에서, 나는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었다. 인파에 둘러싸인 내가 아니라 공연 흐름에 몸을 맡겨 한껏 기뻐하기도 하고 이따금 딴청을 피우기도 하는 나. 즐김과 쉼, 흥분과 여유가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들이 나 혼자만을 위해 공연해주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리시버 안으로 말과 음악이 흘러들어올 때, 나는 현장에서는 받지 못했던 어떤 환대를 느꼈다. 현장의 여백은 상상력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확신도 함께.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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