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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배달하다 생기는 일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배달하다 사람을 구하고 배달하다 목숨을 잃고
불황을 견뎌내려 많은 이들이 또 배달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가 덮쳐온 시대 일상의 버팀목이 된 배달
그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올여름은 계속 비가 내렸다. 코로나에 장마가 겹쳐 한층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먹어야 했다. 외출이 쉽지 않았으니 배달시켜 먹는 것이 수월했다. 비 오는 날의 배달 음식. 장마가 끝나갈 무렵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은 이런 걱정을 했다. “배달원이 빗길을 달려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 주문했다면, 그의 안전에 우리도 약간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해마다 여름엔 비가 왔고, 그럴 때면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2017년 7월 비 내리는 중복에 20대 청년이 치킨을 배달시켰다. 칼럼이 말한 윤리적 소비의 딜레마보다는 중국집에 전화해 “짜장면 한 그릇이요” 할 때의 소소한 죄책감에 더 가까웠겠지만, 어쨌든 청년은 빗길을 달려온 배달원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다. “비 오는 날 주문해서 죄송해요.” 배달원은 돌아갔고 청년은 치킨을 먹었다. 사흘 뒤 청년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치킨집이에요. 며칠 전 제 남편이 배달 갔는데 친절하게 음료수를 주셨다고 해서요. 너무나 감사해요. 남편이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됐다가 건강을 많이 회복해서 치킨집을 하게 됐어요. 배달 가면 말이 어눌하니까 술 마셨다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가게로 전화 오고 해서 많이 좌절했었는데, 손님께 음료수를 받아 와서는 감동했다고, 용기가 난다네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배달에 얽힌 이런 일화는 온라인에서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2018년 1월 초밥 배달 이야기는 방송에도 소개됐다. 개업 1년 차 초밥집 사장은 배달영업을 시작하며 좋은 인상을 주려고 비누꽃 500개를 준비했다. 배달할 때마다 꽃 한 송이와 짧은 글이 담긴 메모지를 함께 넣었다. “기분 좋은 식사이기를 바랍니다” “감사와 사랑을 배달하겠습니다” 같은 글을 적었는데, “독수리도 강풍에 나는 법을 익히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한다네요. 저희도 항상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서 보낸 다음 날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그 손님의 리뷰가 올라왔다.

“사실 어제 그만 살려고, 오래 생각해온 걸 실행하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초밥이 먹고 싶어 주문했어요. 꽃과 메모 감사해요. 받고 펑펑 울었습니다. 꾸역꾸역 먹으며 몹쓸 생각을 했다는 자책감으로 삼켰습니다…. 살아볼게요.”

주문자와 배달자의 관계는 매우 기계적이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도 벌어진다. 코로나 시대의 배달은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모세혈관이자 일상의 버팀목이 됐다. 크게 늘어난 주문 클릭과 함께 이런 이야기도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거리두기 2.5단계였던 지난주 밤 10시의 서울 홍대 거리는 기이했다. 등화관제하듯 상점마다 불이 꺼졌고 인적이 끊겼다. 차도 드물어 컴컴한 도로를 오직 배달 오토바이만 분주하게 오갔다. 그들은 모든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구석진 골목, 경사진 골목, 막다른 골목에도 배달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렇게 많이 다니니 또 뭔가 사연이 만들어지고 있겠다 싶을 때, 인천 을왕리에서 배달 가던 치킨집 주인이 음주차량에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치킨은 배달되지 못했고, 딸은 손님에게 아버지의 참변을 알리는 글을 써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과문’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울산에서 작업 중 실신한 60대 인부를 구급차가 태우고 내달리다 꽉 막힌 편도 2차로를 만났다. 요란하게 사이렌만 울리고 있을 때 배달 오토바이가 구급차 앞에 끼어들었다. 두 줄로 늘어선 차들 사이로 들어가더니 지그재그 전진하며 좌우 차량에 비켜 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지휘자의 오케스트라처럼 그 많던 차들이 배달원의 손짓에 일제히 비켜섰고, 그렇게 열린 길을 구급차는 달려갔다. 이러느라 그가 배달하던 치킨은 아삭한 맛의 골든타임을 훌쩍 넘겼지만, 환자는 늦지 않게 병원에 가서 의식을 회복했다.

배달하다 사람을 살리고, 배달하다 목숨을 잃고, 배달할 때 오가는 우연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 코로나 불황에 내몰린 이들이 재기를 위해 배달에 뛰어들고, 자영업자들이 어떻게든 버텨보려 배달에 매달리고 있다. K방역의 힘은 거리두기를 실천한 사람들에게서 나왔는데, 거리를 두느라 뻥뻥 뚫린 일상의 구멍을 배달이 메워줘 가능했다. 바이러스를 제압하는 날이 오면 의료진 다음 순서쯤에 K배달을 조명하게 될지 모른다. 배달이란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제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철가방과 동일시하던 인식은 시대에 너무 뒤졌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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