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동네북된 국책연구기관들 “차라리 연구 안 하고 싶다”

정부 기조와 비슷하면 외부서 공격, 다르면 정부서 서운한 말 쏟아내


“정책 방향과 다르면 ‘파트너끼리 왜 이래’하면서 정부에서 서운한 말이 나온다. 정부와 기조가 비슷하면 외부에서는 ‘정부 편들어준다’ 의심한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 예민한 주제는 차라리 연구 안 하고 만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전직 국책연구기관 관계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를 문제 삼으면서 국책연구기관의 딜레마가 주목받고 있다. 국가 ‘싱크탱크’로 정부 정책을 연구하는 곳인데 이 특징이 오히려 연구를 제약하는 것이다. 부담이 큰 연구원들이 예민한 과제를 피하기 시작하면 국가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상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매년 1년 치 연구 과제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긴급한 연구, 정부가 필요한 연구 등을 단기 과제로 진행한다. 1년 치 연구 과제는 직전 하반기에 미리 정한다. 주제에 대해 심의도 이뤄진다. 그리고 다음 해 연구 결과가 나오면 국가 예산 등이 반영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공개한다. 이 외 중간 단기 과제는 정부 정책 논의 과정 등에 쓰이는 경우가 있으며 비공개도 많다.

그런데 두 연구 모두 제약을 받을 때가 있다. 1년 치 연구 과제는 공개됐을 때 논란이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조세연의 지역 화폐 보고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없었던 지난해 말 연구가 결정됐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금 발표됐다는 의심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1년 치 과제는 공개가 원칙”이라며 “발표 시기를 한두 달 조정할 수 있어도 발표 여부, 발표 내용을 누가 손대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가 예민하면 외부는 물론 내부 지적도 받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부 여론은 물론 정부에서 ‘왜 이런 내용을 미리 안 알리고 공개했느냐’고 서운함을 나타낼 때가 있다”고 밝혔다.

비공개 단기 과제도 다르지 않다. 공개가 안 되면 연구를 더 폭넓게, 솔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전직 관계자는 “정부가 원하는 답이 연구 결과로 안 나오면 재분석을 요청하거나 내부 보고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국책연구기관은 ‘시어머니’가 여럿이라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책연구기관이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을 연구하라고 만든 곳인데 도리어 연구를 피할 수 있다. 특히 현 정부 정책 특성상 연구가 더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직 관계자는 “현 정부 정책의 특징은 ‘교과서에 없는 것’”이라며 “연구원들은 경제학 이론으로 효율성 등을 분석하기 때문에 ‘답답한 소리를 한다’는 꾸중을 받을 때가 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주눅 들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의 이탈도 늘고 있다. 지방 이전에 연구 제약 몸살까지 앓으며 최근 3년 반(2015년~2019년 상반기) 동안 전체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약 4600명)의 약 21.4%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원 다섯명 중 한 명은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다. 최근에도 퇴직 사례는 계속 늘고 있다.

KDI 출신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정책 연구를 하지만 견해나 분석이 똑같을 수 없다”며 “결과가 다르다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민감한 연구를 안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 KDI 출신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세종시 이전에다 각종 비판으로 연구원들의 자부심이 많이 손상되고 연구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