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아이콘’ 긴즈버그의 죽음… 美대선 혼돈 속으로

사진=EPA연합뉴스

미국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사진) 연방대법관이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7세.

긴즈버그의 별세는 6주가량 남은 미국 대선에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후임 대법관 임명 문제를 두고 진보·보수 진영이 결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자를 “지체 없이(without delay)” 지명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선 후 후임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CNN방송은 긴즈버그의 죽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상치 못한 정치적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혼돈으로 점철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중에도 법원의 보수화라는 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됐다. 트럼프가 지명해 의회 인준까지 마친 보수 성향 연방법관은 지난 6월 200명을 넘어섰다. 재임기간 기준으로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많다. ‘법원 보수화’는 보수 진영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트럼프의 공로다.

특히 대법원은 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 기관이다. 총 9명인 대법관의 이념 지형도는 지금까지 보수 5명, 진보 4명이었다. 트럼프가 진보를 대표했던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 인사를 임명할 경우 보수 6명, 진보 3명이 돼 이념 지형이 보수 쪽으로 확 기울게 된다. CNN은 트럼프에 염증을 느끼는 공화당원들조차 긴즈버그의 죽음 이후 치러지는 이번 대선을 법원 보수화 완성의 기회로 여길 것이라며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트럼프 지지로 결집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반대 전망을 내놨다. 긴즈버그 별세 전인 지난 10~16일 애리조나·메인·노스캐롤라이나 3개주 유권자 653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NYT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 바이든(민주당 대선 후보)이 차기 대법관을 임명하길 바란다’는 답변은 53%로 ‘트럼프가 하길 바란다’는 답변(41%)보다 12% 포인트 많았다.

미국 대선 조기투표가 미네소타 등 4개 주에서 시작된 가운데 지난 1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채 대기하고 있다. 조기투표는 10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신화연합뉴스

NYT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지지 후보를 확실히 정하지 않았거나 투표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은 유권자들이 후임 대법관 임명 문제에서 바이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긴즈버그의 죽음이 본선 투표에서 바이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는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다음주 여성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여성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와 쿠바계 여성인 바버라 라고아 제11연방고법 판사 등이 거론된다. NBC방송은 배럿 판사가 선두주자라고 전했다.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현직 대통령이 대법관을 새로 임명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은 4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대선이 실시됐던 2016년 2월 보수 성향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별세하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진보적인 메릭 갤런드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그러나 당시 상원을 장악했던 공화당은 인준을 거부했다. 결국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뒤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이 임명됐다.

민주당은 4년 전과 같은 상황이 공수만 바뀐 채 재연되고 있는 점을 거론하며 트럼프의 후보 지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대법관 임명을 밀어붙일 경우 이를 저지할 뚜렷한 방안이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형민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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