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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정성진 (25)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목회 여정에 마침표

개척 때 세운 내규대로 만64세에 은퇴, 퇴직금 헌금… 해마루촌 수도원 세워 통일 위해 기도

정성진 목사(왼쪽 세 번째)가 2019년 11월 24일 은퇴예식 후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97년 교회를 개척하면서 내규를 만들었다. 개혁적인 조항들을 담았다. 그중에서도 담임목사 65세 은퇴와 원로제도 폐지, 6년마다 신임 투표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장로도 6년만 시무하도록 했다. 내규는 교회와 성도를 성숙하게 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교회는 꾸준히 성장했다. 무엇보다 평신도 중심 사역을 하며 이들의 지도력을 키운 게 큰 보람으로 남았다. 평신도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이런 소신을 거룩한빛광성교회에 적용했고 성과를 거뒀다. 여러 복지재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광성드림학교를 설립해 기독교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교회 성장에 매몰되지 않고 교회를 항상 분립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 목회 여정이었다.

시간은 쏜살처럼 흘렀다. 점점 은퇴할 때가 다가왔다. 일생 조기 은퇴를 당연하게 여겼고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도 나의 결정을 밝혔다. 이토록 당당했던 나였지만, 은퇴가 다가올수록 허전한 마음이 생겼다. 혼란스러웠다. 은퇴를 앞두고 복잡한 마음을 시에 담았다. ‘은퇴 유감’이라는 제목의 시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면도를 하다가 갑자기 어디로 가지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을 베이고 말았다/ 슬픔을 길어 올리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고 왔는데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왜 섭섭해, 시원하지’/ 호기 있게 당당하게 말했는데 가슴 깊이 숨어있던 미련이 울컥 솟아 나온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놓지 못해 욕먹었던 분들이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직 부르는 곳도 많은데 오래 있었던 그 자리가 나를 끌어당긴다/ 스스로 앞당겨 내려놓았어도 가슴 한편에 아쉬움이 쌓여 섭섭함이 되고 슬픔이 된 것임을 알았다/ 어디로 가지”

실제로 그랬다. 오래 있던 그 자리, 그 자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내 결정을 뒤집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늘 노력했다.

2019년 11월 24일, 은퇴의 날이 됐다. 이날 나는 만64세로 교회를 은퇴했다. 막상 떠날 날이 되니 미련이 사라졌다. 떠난 뒤에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거룩한빛광성교회 교인도 아니다. 초청받을 때만 가는 사람일 뿐이다.

은퇴 예우도 특별할 게 없었다. 퇴직금도 1억원으로 결정했고 받은 날 다시 교회에 헌금했다. 대신 교회는 서울 종로구에 ‘크로스로드’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지원했다. 물론 이 기금은 10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기한이 되면 교회에 돌려줘야 한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 해마루촌에 수도원을 세웠다. 거창한 공간은 아니다. 작은 집이다. 이곳은 장로님과 교인들이 십시일반 후원해 마련해줬다. 통일을 위한 기도의 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통일을 바라며 홀로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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