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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정책의 정치학, 철학은 없고 ‘예쁜 말’만 있었다

[이도경의 에듀 서치]


문재인정부가 교육 철학이 없다는 사실은 집권 초반에 들통 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걸었었죠. 수능 절대평가는 단순히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고교 교육을 수능에서 해방시켜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다른 대선 공약인 고교학점제와도 맞물려 있죠. ‘수능 영향력 감소→고교 교육 정상화→공교육 강화→사교육 의존도 감소’로 이어지는 측면에서 교육 전반을 관통하는 이슈입니다.

문재인정부는 간단히 이를 뒤집어버립니다. 공약을 내건 이유와 이행하지 못한 사정이 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죠. 그러고는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를 넘나드는 ‘폭탄 돌리기’를 시작합니다. 대입정책의 불확실성은 사교육비 폭증으로 이어졌죠. 현 정부 들어 사교육비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이유입니다. 기자 개인 의견이 아니라 교육부가 비공식 회의에서 내놓은 분석이랍니다.

절대평가 공약을 포기한 이유는 ‘정치’였습니다. 기자가 들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문재인정부 초반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해보니 수능 성적 위주인 정시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영혼도 없고 눈치도 없는’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담은 새 대입정책을 내놨다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죠. 한 여권 내부 인사는 기자에게 “도대체 어떤 ×××가 절대평가를 공약에 넣은 거야?”라고 했었습니다.

이후 공약 파기 수준이 아니라 역주행을 합니다. 정시 비율은 우여곡절 끝에 ‘30% 이상’으로 강화됩니다. 그러나 ‘조국 사태’ 수습 과정에서 서울의 주요 대학은 40% 이상으로 올립니다. ‘조국 사태’ 당시 여당 의원들이 “정시 비중을 늘리자”고 주장할 때 교육부의 대입 실무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직을 걸고 정시 비중이 늘어나는 일 없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시 비중을 늘리겠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교육부는 발표 직전까지 몰랐지만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합니다. 입시 현장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고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가, 이득은 사교육이 봤죠. 교육 철학이 있었다면 하다못해 학생·학부모를 배려하는 마음이 약간이라도 있으면 발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과거 얘기 그만할까요.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의 굴레를 벗었습니다. 법외노조 상태에서도 문재인정부는 전교조 출신을 중용해 왔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부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포진해 있습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떨까요. 유 부총리는 정치인입니다. 경기도지사를 노린다는 소문이 있죠. 문 대통령의 신임도 두텁다니 ‘성공한 교육부 장관’ 타이틀만 있으면 탄탄대로겠죠. 교육계 주류로 자리한 전교조와 전교조 출신 인사들의 평가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유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정부-전교조 ‘거리두기’를 끝내고 전교조에 공을 들입니다. 취임 직후 전교조를 방문해 정책 파트너로 삼았고, 대법원 법외노조 판결 직후에는 직접 찾아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교육부에서 국가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국장 자리에 전교조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고 합니다.

특정 교원노조 출신이 교육정책 결정 구조를 독점하는 상황도 우려스럽지만, 정치와 맞물릴 때 예상되는 파열음은 정말 끔찍합니다. 이미 수능 절대평가 논란에서 경험했기 때문이죠. 전교조를 위시한 진보 성향 교육계는 일제고사를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수능은 일제고사의 ‘끝판왕’격입니다.

정부와 진보 성향 교육계는 문재인정부 집권 3년 반 동안 ‘수능=공정’이란 프레임을 약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패착입니다. 수능 비중이 커지면 서민 자녀와 지방에 불리하다는 데이터는 넘칩니다. 그러나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이나 ‘조국 사태’ 같은 게 터질 때마다 “역시 수능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화됩니다.

이런 와중에 진보 성향 교육계는 다시 수능 영향력을 줄이려 들 것입니다. 정부도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는 서울 주요 대학에서 50%에 육박할 정시 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40% 이상으로 의무화됐지만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하는 비율까지 포함하면 40% 중후반대로 예상됩니다). 이미 예정된 수순처럼 정부와 진보 성향 교육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주축으로 수능을 손볼 듯합니다. 국가교육위도 문 대통령 공약입니다. 정권에 따라 ‘조변석개’하지 말고 안정적으로 100년 대계를 설계하자는 취지입니다. 국가교육위법이 연말쯤 통과하면 대통령도 함부로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튼 국가교육위는 진보 교육계가 주도하겠죠. 초대 위원장으로 현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전교조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입니다. 법이 연말 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위원회가 출범하겠죠. 대통령 선거 국면입니다. 그런데 정시를 축소하자는 ‘용감한’ 후보가 과연 있을까요. 야권은 물론이고 여권에도 정시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주장을 해온 유력 후보가 존재합니다.

문재인정부의 슬로건은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 교육 분야에서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 이런 예쁜 말 그동안 참 많이 했습니다. 만약 국가교육위와 대통령 공약, 진보 교육계 인사와 집권 세력이 충돌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혼란’이 불거진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나중에 이런 예쁜 말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단지 기우에 그치길 기원해 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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