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된 사전투표… “바이든은 무능” vs “트럼프는 독재자”

버지니아 페어팩스 현장 르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년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21일(현지시간) 사전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정부 센터 앞에 차려진 공화당 천막에서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같은 장소에 설치된 민주당 천막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 마스크를 쓰고 서 있는 자원봉사자 크리스토퍼 앰브로스.

대통령 선거를 43일 남겨놓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정부 센터에는 월요일인데도 사전투표(Early Voting)를 하려는 유권자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페어팩스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오후 2시30분 현재 650명이 사전투표를 마쳤다”면서 “오후 4시30분에 투표가 마감되면 거의 1000여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에 비해 사전투표율이 4배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은 버지니아주에서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거의 모든 유권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또 6피트(1.8m)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전투표가 더디게 진행된다”고 귀띔했다.

미국 대선은 사실상 시작됐다. 버지니아, 미네소타,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등 4개주는 지난 18일부터 사전투표에 돌입했다. 이들 주는 미국에서 사전투표가 가장 먼저 시작됐다.

사전투표에 대한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페어팩스카운티는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18일 1500여명의 유권자들이 투표했다”면서 “이는 2016년 대선 사전투표 첫날과 비교할 때 5배 늘어난 숫자”라고 밝혔다고 지역방송국인 WUSA9이 보도했다. 미 언론들은 올해 미국 대선 투표율이 2016년 대선 투표율 55.67%를 넘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은 사전투표, 우편투표와 대선 당일 투표소 투표로 치러진다. 사전투표에 유권자들이 몰리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현상이다. 대선 당일인 11월 3일에 사람들이 몰릴 것을 우려한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편투표에 대한 불안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편 투표용지가 지각배송되거나 도중에 분실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사전투표를 많이 택한다는 분석도 있다.

버니지아주는 민주당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주다. 2016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버지니아주에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눌렀다. 대선에서 공화당이 버지니아주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때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사전투표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 중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녹음한 듯 되풀이했다.

교사로 은퇴했다는 애덤 베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밀리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을 매우 잘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코로나19 피해는 더욱 극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년의 백인 여성은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은 무능하다”며 “바이든은 교육이나 경제, 치안, 의료보험과 관련해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무너질 것”이라며 “바이든은 약하기 때문에 미국에선 폭력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자원봉사자인 앤드리아 포티는 사전투표장 인근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가정주부인 포티는 기자에게 “한국을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할 능력이 안 된다.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만이 북한을 설득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편투표가 부정선거·사기 투표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신봉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지지자는 ‘우편투표가 집계되면 바이든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대해 “그럴 수 있겠지만 바이든은 우편투표가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반(反)트럼프’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바이든을 지지하는가’보다 ‘왜 트럼프를 떨어뜨려야 하는가’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백인 청년은 “대선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사전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이 청년은 이어 “트럼프는 거짓말쟁이에다 인종차별주의자, 독재자”라면서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중년의 백인 남성은 “트럼프가 직접 죽이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코로나19를 잘못 대처하면서 많은 미국인이 죽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시대에 인종차별 문제도 더 악화됐다”면서 “트럼프는 미국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일즈맨이라는 스캇 머레이는 “내가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줬는지는 비밀”이라고 했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전투표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4년 동안 백악관에 있으면서 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에게는 투표하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바이든 후보의 자원봉사자인 크리스토퍼 앰브로스는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전투표에 참여해 놀랐다”면서 “높은 사전투표가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전투표율이 높아진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열망이 뜨거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페어팩스=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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