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정치인 미워!’ 이탈리아 국민들, 의원수 36% 감축안 통과

국민투표 결과 70% 찬성… 상하원 945명서 600명으로

이탈리아에서 의원 수 감축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가 실시된 가운데 한 여성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 BBC방송 캡처

이탈리아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3분의 1가량 줄이는 개헌안이 통과됐다. 지난 40여년간 번번이 좌절됐던 의원 감축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실현됐다.

21일(현지시간) ANS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틀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 69.6%, 반대 30.4%로 의원 수 감축안이 사실상 통과됐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상·하원의원 수는 각각 36% 줄어들게 됐다. 다음 의회가 시작되는 2023년부터 상원의원은 315명에서 200명으로, 하원의원은 630명에서 400명으로 각각 조정될 예정이다.

국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53.8%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절대 낮지 않은 수치다. 지오바니 오르시나 루이스대학 정치과학 교수는 “이처럼 높은 투표율은 이탈리아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면서 “투표장에 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회에서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원 수 감축은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한 축을 구성하는 반체제 성향의 정당 ‘오성운동’이 저효율·고비용 의회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2018년 총선 전에 공약한 사안이다. 앞서 의원 감축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10월 압도적인 지지로 상·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의원 수 감축은 헌법 개정 사안으로 국민에게 직접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낸 일부 현직 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해 국민투표를 하게 됐다.

이탈리아에서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 직후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파시스트가 다시 출현하지 못하도록 견제한다는 취지로 의회를 비대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나치게 의원이 많아 불필요한 정치 공방이 자주 벌어지고 의회 운영에 많은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의 문제가 부각됐다.

이탈리아 인구는 6000만명으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인구 10만명당 의원 수는 1.56명으로 한국(0.58명)보다 3배나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97명)을 훌쩍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주요국인 독일(0.80명) 프랑스(1.48명) 스페인(1.32명)보다 많다.

이탈리아 AGI통신은 이번 의회 감축안이 확정되면 세비를 포함한 각종 비용을 연간 8200만 유로(약 1100억원)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감축안을 주도한 오성운동은 연간 최대 1억 유로(약 1360억원)의 혈세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성운동을 사실상 대표하는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은 국민투표가 종료된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역사적인 성취를 이뤘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이탈리아에서는 1983년 이래 37년 동안 총 7차례의 의원 수 감축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