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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가’ 강요배, 풍경에 눈 돌린 이유를 읊조리다

에세이 ‘풍경의 깊이’ 출간


“물이 뒤집히고 눈발이 솟구치고 구름장이 찢긴다. 달과 별이 떨린다. 이 맵찬 바람 속의 풍경들, 그리고 이 한차례 바람이 다 지나간 후 섬의 중심에 의연히 앉아 있는 새하얀 산, 한라산. 이것이 나에겐 참다운 풍경으로 비친다.”

‘제주 화가’ 강요배(68)씨는 그 흔한 풍경을 그린다. 하지만 그가 그리면 ‘흔해 빠진 풍경화’가 아니다. ‘강요배식 제주 풍경화’가 된다. 포효하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폭풍 뒤의 고요가 주는 평온이 찾아오고, 4·3사건의 아픔이 어딘가 숨어 있는 듯한….

그 이유를 작가 스스로 밝힌 에세이 ‘풍경의 깊이’(돌베개)가 나왔다. ‘강요배 예술 산문’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의 장점은 대표작 130점이 수록됐다는 점이다. 화집처럼 책장을 넘기면 나타나는 그림들이 반갑다(사진). 칠순을 바라보는 작가는 나직한 어조로 그림들에 관해 설명한다.

서울대 미대를 나와 서울에서 교사, 출판사 직원 등으로 일하며 작업을 병행하던 그는 불혹인 1992년 제주로 귀향했다. 그리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을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길뿐이었다”며 풍경에 눈 돌린 이유를 고백한다. 그러곤 집요하게 물었다. “예술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자기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중략) 그런데 나를 알려면 나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게 나에게는 고향의 역사였다.” “중요한 것은 시간성을 생각해보는 거다. (그것은) 풍토성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꿋꿋하고 굳센 작가를 붙잡았던 생각의 켜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기분. 덕분에 풍경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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