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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한 줌의 용기, 불안·슬픔에 맞설 방파제

윤곽 / 레이첼 커스크 지음 / 김현우 옮김, 한길사, 304쪽, 1만5500원

‘윤곽’은 주인공이 여름 글쓰기 강좌를 위해 아테네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사연을 콜라주처럼 묶어낸 실험적인 소설이다. 사진 속 각각의 사진처럼 연결되지 않는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을 구성한다. 연결되지 않는 각각의 이야기를 함께 듣다 보면 각자의 슬픔과 불안 같은 감정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 박사의 저서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에서 얻은 위로는 꽤나 구체적이었다. 인간이 겪는 감정적 아픔을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진행된 진화의 결과로 보는 신경인류학은 가령 다음과 같은 여유를 내게 주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느꼈던 분노와 불안이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방금 무례하고 비정한 끼어들기에 성공한 후 뻔뻔한 비상등만 깜빡이고 있는 내 앞의 세단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이리라. 어쩌면 그는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안전거리 유지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듯이.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비상등을 켠 상태로 연약한 마음을 부여잡고 사는 것이다. 인류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묶여, 사람이라는 작디작은 정체성을 지닌 채로.

같은 차도에 숱한 운전자를 저주하면서 본인에게만큼은 한껏 너그러운 이상한 존재들이 가득한 올림픽대로에서,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이나 떨어져 있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경인류학에 의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의 고민, 갈등, 고통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몸 안에 차곡차곡 쌓인, 가장 오래된 동시에 맨 앞에 당도한 과제인 것이다. 반면 이러한 불안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고가 날까 봐 차선과 신호를 지키고, 불안한 마음에 속도를 있는 대로 올리지 않으니까. 끼어들기 전후에 비상등을 켜고, 약간의 미안함을 표하는 것 또한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진 마음의 결함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문장을 믿는 편이다. 우리의 마음이 위에서 묘사한 도시고속도로에서의 작은 일화와 같다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해결될 불안이라면 그것이 인생을 잠식할 일도 없다. 슬픔에 겨워 몸이 상하고 침윤된 우울감에 잠 못 이룰 사람도 없을 테다. 마음의 문제 또한 아주 오래된 인류의 문제라는 설명은, 작은 위안은 될지라도 눈앞의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당장 잠식당하는 영혼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병적인 불안과 슬픔은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병적인가? 어디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고, 육신을 지배하는 불안인가?


엉뚱하게도 레이첼 커스크의 장편소설 ‘윤곽’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주인공 화자는 영국의 소설가로 여름 동안 글쓰기 강좌를 위해 아테네에 간다.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옆자리 남자에서부터 동료 강사와 편집자, 그리스의 작가와 수강생에 이르기까지 소설의 거의 모든 인물은 끊임없이 말한다. 주인공은 그들의 말을 듣는 위치에 선다. 주인공이자 화자이지만 소설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늘어놓는 각자의 사연이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그들은 결혼 생활에 실패했거나 직업적 정열을 잃었거나, 사랑이 떠났거나, 분열되는 자아를 모른 체하고 있거나 하는 등의 불안과 상실을 겪고 있다. 그들은 그들 삶을 잠식하는 불안의 연원을 기억의 편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다. 각자에게는 하나의 이야기이나, 소설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는 없다(이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은모든 장편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가 떠오르기도 했다. 기이하고 반가운 우연이었다). 소설의 전통적인 미덕과 기법을 배신하면서까지 이 소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목적지가 있기는 한 것일까.

최근 거대한 슬픔의 파도에 맞서게 된 이를 알게 되었다. 가깝다면 가까우나 그 가까움의 거리를 몰라 어쩌지를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슬픔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크기인지, 어떠한 과거였고, 어떠한 현재인지, 무엇이 불안하고 무엇에 화가 나는지…. 그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여 슬픔과 불안의 구체적 모양을 그렸다. 그것의 윤곽이 드러나자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도 생긴 듯하다. 불안에 맞서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을 채비를 하는 듯했다. ‘윤곽’은 타인의 이야기를 모아 흩뿌려놓은 서사 실험이 강한 소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여, 이야기의 쓰임에 관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불안에 맞설 용기를 준다. 한 줌의 용기가 슬픔의 파도 앞 방파제가 되리라. 이야기하라, 자신의 슬픔을. 들어라, 그의 불안을. 충분히 그러고 나서야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그 흐릿한 윤곽이라도 보여줄 테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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