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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맛’ 맘껏 만끽하려면…

[책과 길] 살아있다는 건 / 김산하 지음 갈라파고스, 268쪽, 1만6500원


출퇴근길 풍경을 떠올려보자. 다수의 눈들은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대중교통을 탈 때는 물론이고, 걸을 때도 스마트폰에 시선이 붙잡힌 경우가 많다. 최근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더해졌다. 이름처럼 기기 밖 소리를 노이즈(소음)로 분류해 차단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이어폰과 다르다. 눈과 귀를 닫은 채 지내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살아있다는 건’의 저자는 이런 모습을 일러 “손바닥만 한 작은 세상에 이목을 집중하느라 나머지 세상은 늘 도외시된다”고 말한다. 화창한 날 높은 하늘과 뭉게구름, 나부끼는 수풀, 지저귀는 새들이 스마트폰과 이어폰에 의해 도외시되는 것들로 제시된다. 저자는 또 “매일 전자 매체에 나의 오감을 헌납하는 일상”은 “내가 속한 생태계와의 모든 끈을 끊겠다는 매몰찬 선언”이라고도 규정한다. 지금, 여기, 내 삶에 충실하지 못한 이러한 모습은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살아있다는 건’은 야생 영장류 학자인 저자가 ‘살아있다’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인간사회를 들여다본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살아있다’는 어떤 의미일까. 이는 ‘산다’와의 비교를 통해 의미가 보다 도드라진다. 저자는 ‘산다’가 “삶을 통과한다는 느낌”을 주는 데 반해 ‘살아있다’는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그 현재성에 집중한다”라고 설명한다. “해치우듯 삶을 지나치지 않고 살아있는 맛을 마음껏 만끽한다는 의미”라는 표현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저자는 야생 영장류 학자답게 동식물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수시로 드러내며 인간사회와 비교·대조한다. 어치와 상모솔새를 통해 주어진 조건에 상관없이 씩씩한 모습을 발견하고, 여름비가 그친 후 짝짓는 잠자리를 통해선 떳떳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읽어내고, 눈 속으로 기꺼이 처박히는 여우를 통해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놀이 정신을 찾아낸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저자는 인간을 자연을 지배해온 절대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상대화한다.

동식물과의 교감에서 얻게 된 저자만의 인상적인 깨달음도 자주 마주할 수 있다. ‘막냇동생’처럼 키운 개를 떠나보낸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 후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사랑은 슬픔을 저축하는 행위다. 언젠가 그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것을 한꺼번에 인출해야 한다. 많이 쌓을수록 많이 거둔다.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에 수반되는 슬픔과 고통이 두려워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건 생명이 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한 행위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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