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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니어의 실패한 투자, 도널드 트럼프

[책과 길]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 / 메리 트럼프 지음, 문수혜 외 옮김, 다산북스, 320쪽, 1만8000원

책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임상심리학자인 메리 트럼프의 시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일가를 그리고 있다. 메리는 책을 통해 삼촌을 비롯한 트럼프 일가에 드리워진 할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의 어두운 그림자를 이야기한다. 메리는 할아버지가 ‘고기능 소시오패스’로 “감정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평가한다. 사진은 1987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와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왼쪽)가 복싱 프로모터 돈 킹과 함께 기자 회견에 참석한 모습. AP뉴시스

“아버지 사진 멋지지 않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4월 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흑백사진을 가리키며 첫째 누나 메리앤에게 물었다. 메리앤은 “어머니 사진도 같이 두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네”라고 답한다. 이를 본 트럼프 대통령의 조카 메리는 “도널드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대답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집무실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본 메리는 “할아버지가 귀신처럼 내 뒤를 맴도는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에 나오는 트럼프가(家)의 백악관 가족만찬 장면은 책 전체 내용을 압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5형제(3남 2녀) 중 1981년 세상을 떠난 장남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이하 프레디)의 딸 메리는 ‘너무 과한데…’를 통해 넷째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짙게 드리운 할아버지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상심리학자이면서 트럼프가에서 늘 뒷전에 밀렸던 여성의 눈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그 가족사를 풀어낸다.


‘원조 트럼프’ 프레드 트럼프

독일 출신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트럼프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이하 프레드)다. 아버지가 스페인독감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열두 살에 가장이 된 프레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차고를 지어 이웃에게 팔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 공급 붐을 타고 임대주택 건설업자로 변신해 부동산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권력과 연줄이 좋은 사람에게 접근해 자신의 사업을 유리하게 만들 정도로 처세술에 능했고, 쇼맨십도 강했다. ‘대단하다’ ‘훌륭하다’ ‘완벽하다’ 같은 과장된 표현도 자주 썼다고 한다.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세금 내는 것은 무엇보다 싫어했다.

책에는 이런 그의 품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화가 등장한다. 건물 난방에 불만을 가진 임차인이 지속해서 항의하자 프레드는 직접 그 집을 방문한다. 문을 두드린 후 양복 상의를 벗은 프레드는 실제 한기가 느껴지는 집 안에선 셔츠 소매까지 걷어 올렸다. 그러고선 임차인에게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음말도 덧붙였다. “열대 지역에 있는 것 같네요.”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랫사람들이 무언가를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프레드의 권위적인 특성은 집안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자녀의 친구들이 ‘노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이들에게 딱딱하고, 놀이를 하는 경우도 없었다. 저자는 “그는 마치 아이였던 적이 없는 사람과 같았다”고 평가했다.

프레드의 철권통치하에서 장남 프레디에겐 기회와 족쇄가 동시에 제공됐다. 자신의 뒤를 이어 ‘트럼프 제국’의 확장을 위해 쓰이게 될 장남에겐 다른 형제들에겐 없는 우선권이 있었다. 반면 아버지의 계획을 거스르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프레드의 장남에 대한 기대는 다음 문장에 함축돼있다. “그는 자신의 장남이 이기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마는 ‘킬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장남에겐 ‘킬러 기질’이 없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떠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로 하고 TWA 항공사에 입사한다. 장남으로서의 우선권을 포기한 결정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수시로 전화해 폭언을 퍼부었다. 견디지 못한 그는 술에 의지하고, 급기야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능력과 의지에 반한 결정이 거듭되면서 장남은 급속히 무너졌다. 알코올 중독 등으로 몸이 약해진 장남 프레디는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트럼프 제국’ 후계자 된 넷째 도널드

‘킬러 기질’이 없었던 장남과 비교할 때 넷째 도널드는 아버지에 더 가까웠다. 장남인 프레디와 일곱 살 터울로, 형처럼 하면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1968년 대학 졸업 후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형보다 나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연이어 트럼프매니지먼트에 속한 여러 회사의 부사장으로도 승진했다. 형에 대한 태도 역시 아버지의 관점을 공유했다. 비행기 조종사 시절의 형에게 “미화된 버스 운전사일뿐”이라고 비아냥댄 적도 있었다. 결국 형 대신 ‘트럼프 제국’의 후계자로 낙점됐다.

하지만 책에 서술된 도널드의 사업가로서의 능력치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기반을 다진 뉴욕 브루클린을 떠나 애틀랜틱시티에서 벌인 사업들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저자는 이 점이 할아버지 프레드와 삼촌 도널드의 분명한 차이라고 지적한다. “프레드는 정직하지 않고, 진실성도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탄탄한 사업체로 수입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진정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도널드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과 아버지의 돈에 기대 환상을 만들어내는 능력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도널드의 이미지 역시 아버지의 막대한 부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단언한다. 도널드가 애틀랜틱시티에 투자한 카지노의 사업 금액을 내지 못했을 때 아버지 프레드는 카지노 칩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대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나오는 대로 도널드는 아버지 생전에 4억1300만 달러를 증여 받기도 했다. 이처럼 막대한 혜택을 입었지만 정작 아버지 사후인 2004년 아버지의 사업체 대부분을 매각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할아버지의 투자 실패”라고 꼬집는다. “프레드는 돈을 주고 산 도널드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인 양 동일시했다.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금전적인 후원이 없었으면 도널드의 명성은 불가능했을 거라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할아버지의 투자는 실패였다. 자신이 일군 기업이 영원히 번성했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SAT 대리시험’ 에피소드 등 지난 7월 미국 출간 당시 기사화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들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너무 과한데…’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타 책들과 다른 장점이라면 성장 배경의 핵심인 가족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트럼프가에 우호적이지 못한 저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가족의 눈으로 본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가에 대한 전사(前史)라 할 만하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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