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결핵인 줄 알았는데… 생식기암 ‘융모암’이라니

발열·가슴통증·호흡곤란 증상, 폐서 발병 드물어… 자칫하단 오진

CT영상을 보면서 폐 조직검사를 하는 장면. 중앙대병원 제공

44세 여성 A씨는 3년 전 갑작스럽게 열이 나고 숨이 차며 가슴통증을 느꼈다. 동네병원에서 폐렴으로 진단돼 2주간 항생제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대학병원을 찾았다. 호흡기내과 의료진은 흉부CT에서 폐에 몽우리 같은 게 보여 처음에 전이성 폐암이나 결핵을 의심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혈액 및 결핵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

그런데 CT영상을 보며 조직검사를 진행한 결과, 놀랍게도 폐에서 생식기암으로 알려진 ‘융모암’이 발견됐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의 자궁이나 남성의 고환에 주로 생기는 암인데, 폐 자체에서 발생하는 건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폐렴이나 결핵, 심지어는 폐암으로 오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진단이 늦어져 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 호흡기내과로 왔던 A씨는 융모암의 주 진료과인 산부인과로 의뢰됐고 복합 항암치료를 받아 성공적으로 암을 이겨냈다. A씨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이은주 교수팀은 희귀한 ‘원발성 폐 융모암’ 환자인 A씨의 치료 사례 논문을 최근 국제 암학술지(Cancer Investigation)에 발표했다.

지금까지 폐 융모암이 보고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65례에 불과하다. 진단에 필요한 전형적인 병의 모습이나 표준 치료법이 정립돼 있지 않다. 28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국내 융모암 발생은 연간 40~60여건씩, 지난 10년간 500여건 정도다. 80% 이상이 자궁이나 주변 장기에서 발생했고 폐의 경우 5건 미만에 그친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폐에 병변이 생겼을 때 의료진 조차 융모암이라고 생각지 못한다. 호흡곤란이나 가슴통증, 가래 등 증상으로 폐렴이나 결핵 등 다른 병을 의심한다. 이 교수는 “원발성 폐 융모암의 65증례를 살펴보면 20%에서 융모암일 거라는 생각을 못해 진단을 못하는 사이에 암이 빠르게 진행돼 결국 치료도 못하고 사망해 부검을 통해 진단됐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80%는 폐암으로 오진해 수술 치료가 진행됐고 수술 후 조직검사를 통해 융모암으로 진단됐다.

이 교수는 “융모암 진단을 받아도 절반 가까이(46.2%)는 치료에 실패해 사망률이 높고 예후가 매우 좋지 않았다. 수술이든 항암과 수술 병행 치료든 실패하면 대부분 6개월 안에 목숨을 잃는다”고 말했다. 폐암 세포와 구별이 어려워 오진해서 불필요하게 광범위 폐절제 수술을 시행해 적절한 항암 치료 시기를 놓친 경우도 많다. 다만 폐 융모암은 ‘융모성성선자극호르몬(B-HCG)’이라는 독특한 종양 표지자(바이오마커)를 갖고 있어 혈액 검사를 통해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모든 폐 병변에 B-HCG 혈액검사를 포함하면 진단이 늦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폐렴이나 결핵이 잘 낫지 않는다면 폐 융모암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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