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내밀한 정보 들어있는 꿀단지”… 리니언시 주도권 다툼

[스토리텔링 경제] 누구를 위한 전속고발권 폐지인가

김상조(오른쪽)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2018년 8월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말 대전지법 천안지원 강우찬 부장판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 부장판사는 전속고발제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 전면개정안을 만들어 국회로 넘긴 공정위 직원들이 술렁였다.

여당은 ‘공정거래 3법’, 야당은 ‘규제 3법’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경제입법 3법 중 하나인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속고발제 뒤에 숨어 있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감경제도)의 변화와 이로 인한 문제점을 짚어봐야 한다.

전속고발제는 허울, 핵심은 리니언시

전속고발제는 담합 등 불공정행위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1980년 공정위가 만들어진 직후 경쟁법 사건에 대해 공정위에 전문성을 인정해 부여한 제도다. 정부는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서 가격·입찰담합 등 주요 담합 사건에 대해서는 전속고발제를 40년 만에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전속고발제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전속고발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검찰은 입찰방해죄 위반 혐의로 공정위와 별개로 담합 사건을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해 왔다. 2013년부터는 검찰은 물론 조달청, 감사원 등 정부기관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이에 무조건 응하고 있다. 전속고발제 폐지 자체는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이번 전속고발제 폐지의 핵심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리니언시를 실제로 누가 컨트롤할 것인가에 있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자수할 경우 1순위자에게는 과징금을 100%, 2순위자는 50%를 면제해주고, 1·2순위자 모두에게 검찰 고발을 면해주는 제도다. 공정위가 적발하는 담합 10건 중 9건 정도는 리니언시로 이뤄진다. 리니언시 없이는 은밀하게 당사자 간 이뤄지는 담합을 사실상 적발하기 힘든 구조다.

전속고발권 폐지 전인 현재까지 리니언시 제도 운영의 주체는 100% 공정위였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와 함께 리니언시의 주체는 사실상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2018년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속고발제 폐지 관련 합의문’에 서명했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 합의문은 효력을 발휘한다.

리니언시에 왜 집착할까

리니언시 정보를 검찰이 독점하려 하자 경찰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경찰은 지난 7월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입법예고 기간 중 리니언시 정보를 검찰뿐 아니라 경찰도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공정위 관계자는 28일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유일하게 의견을 제시한 행정기관”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제사건 조사 주도권을 검찰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다.

검찰과 공정위는 물론 경찰까지 리니언시에 집착하는 이유는 기업 수사를 위한 활용가치 때문이다. 리니언시를 하는 개인과 법인들이 담합을 자수할 때는 자신들은 물론 짬짜미를 함께한 다른 기업의 영업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또 퇴직자가 재직 당시 기업의 담합 혐의를 자수할 때는 내부비리 등을 함께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와 검찰에는 리니언시 내용이 기업의 내밀한 정보가 들어 있는 꿀단지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8년 검찰과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할 당시 검찰 관계자는 “(리니언시를 통해 축적한) 공정위 캐비닛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공정위를 압박했다.

불투명해진 리니언시, 부작용 우려

리니언시 제도 운영 주체가 사실상 검찰로 넘어가면서 위헌 논란이 불거졌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은 ‘리니언시에 따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세부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강 부장판사는 “형의 감경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인데 이를 법이 아닌 시행령에 위임할 경우 3권 분립에 위배된다”면서 “어느 법에도 형의 감경 규정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위헌 논란뿐 아니라 재계와 학계에서는 리니언시 제도 변화 과정에서의 혼란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리니언시를 한 법인과 개인에 대한 과징금과 형사처벌 면제는 모두 공정위가 결정했다. 하지만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과징금 면제는 공정위가, 형사처벌 면제는 검찰이 결정하는 이중 구조가 된다. 결정 주체가 이원화되면서 1순위로 리니언시를 해 과징금은 면제받아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불투명성이 강해지는 셈”이라며 “기업들의 담합 자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주진열 교수는 “담합에 대해 형사제재와 행정제재(과징금 부과)를 동시에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리니언시가 이중으로 운영되면 혼란이 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용 교수도 “리니언시 제도 변화는 시장에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검찰과 공정위 모두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리니언시 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할지를 담은 시행령이 나와야 하지만 정부는 국회 법 통과 이후에 생각해볼 문제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리니언시 시스템이 불투명해져야 공정위나 검찰 전관 출신들이 사건을 무마할 영역이 커지게 된다”면서 “전속고발권 폐지가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검찰과 공정위의 밥그릇 싸움인지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신재희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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