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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그 쇳물’ 챌린지에 국회가 응답하라


정의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하는 릴레이 시위 중
용광로 추락 추모시가 곡으로 만들어져 ‘함께 노래하기’에 동참하는 시민 이어져
개정 산안법 시행에도 산재 사망 줄지 않아… 안전 투자보다 비용 절감 우선이 문제
청원 10만명 동의로 상임위 법안 회부, 사업주 책임 묻는 시스템으로 죽음 행렬 막아야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슬픈 곡조의 잔잔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기타를 치며 애도의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는 산재노동자 추모곡 ‘그 쇳물 쓰지 마라’였다. 장 의원은 손편지를 통해 법 제정을 호소했다. “살려고 일하러 갔는데,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달 7일부터 정의당이 시작한 릴레이 1인 시위의 한 장면이다. 정의당은 21대 첫 정기국회가 개원함에 따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첫날 심상정 대표가 1인 시위를 한 이후 소속 의원들이 번갈아가며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로텐더홀 현장에는 ‘매해 2400명, 하루 7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갑니다’라는 글귀가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안전하게 살 권리’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원한다는 절규와 함께.

정의당이 시위에 돌입한 7일은 10년 전 그날이다.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20대 노동자가 용광로에 고철을 넣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해 용광로 속에 빠져 숨진 날이다. 형언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고다. 당시 보도 기사에 제페토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댓글로 올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댓글시인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이 시에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최근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었고, 그날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에 시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020명(사고 855명+질병 1165명). 추락하고, 기계에 끼이고, 화재에 질식해 소중한 목숨을 잃는다. 희생자는 대부분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이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생을 마친 협력업체 직원 김용균씨가 대표적이다. 올 1월부터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건만 반쪽 입법에 그쳐 산재 사망자가 줄지 않고 있다. 이달 10일에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2t 장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지난 4월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안전 규정을 도외시한 참사라는 점에서 2008년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와 판박이였다.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기업이 안전 투자보다는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안전 조치 위반에 대한 처벌이 약한 탓이다. 기업에 부과된 벌금이 평균 450만원에 불과하니 말 다했다. 게다가 원청업체는 잘도 빠져나간다. 연간 산재 사망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400여명보다 훨씬 많다. 죽음의 고리가 그만큼 단단하다. 그럼에도 코로나 차단에는 적극 앞장서는 정부, 기업이 산재 사망엔 경각심이 없다.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시스템을 바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말단 관리자가 아닌 사업주의 책임 등을 강력하게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경영계가 처벌보다는 예방이 먼저라고 주장하지만 이 법이야말로 예방을 위한 최고의 백신으로 작동할 수 있다.

꿈쩍 않는 국회를 움직이기 위해 시민단체가 직접 발의한 국민동의 청원이 22일 10만명 동의를 얻음에 따라 국회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 것은 만시지탄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연내 입법화를 촉구했다. 이제는 국회의 시간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그런 불행을 이젠 막아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라고 지적했듯 여야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민심을 잘 받들어야 할 것이다.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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