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몸집의 거미를 본 것은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거미 한 마리가 서너 줄의 거미줄을 타고 처마 밑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러 집으로 돌아가는 투였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거미가 궁금했습니다. 놀랍도록 덩치가 컸으니 거미줄을 얼마나 크고 멋지게 쳤을까. 운동장만 한 거미줄엔 어떤 것들이 걸려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가서 보니 어제 본 그대로였습니다.

문득 장난기가 동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거미를 골려주고 싶었지요. 끊어지지 않을 만큼 거미줄을 흔들었습니다. 거미줄이 흔들리면 뭔가 걸려든 줄 알고 서둘러 내려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거미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더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순간 화들짝 낯이 뜨거워졌던 것은 알량한 우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미줄을 친 적이 없으니 걸려들 것 없다는 거미의 정직함을 두고서, 한 것 따로 없어도 바라는 것은 많은, 뭘 했는지 뭘 안 했는지를 잊은 채 바라기만 하는 우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우리 삶이 저 거미만 같았으면, 그날 바친 아침기도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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