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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칼럼] 문 대통령은 뭘 남기려는가


임기 종반…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할 시간
경제, 검찰개혁, 외교안보 등 좌초했거나 의도 변질
후대에 남길 업적 안 보여
‘표리부동, 편 가르기 정권’ 오명 피하는 게 급선무

민간인이든 저명한 공직자든 후세에 유산처럼 남기는 업적을 영어로 레거시(legacy)라고 한다. 원래는 특정인이 사후에 남긴 물질적 자산이라는 뜻이었는데, 정신적 유산이나 업적, 영향 등을 포괄하는 쪽으로 의미가 넓어졌다. 기자의 미국 특파원 시절은 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와 겹쳤는데, 백악관 발표문이나 언론 보도, 학자들의 논평에서 이 단어가 참 많이 나오는 걸 목격했다.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오바마의 치적은 무엇일까, 오바마의 부음에는 어떤 내용이 적힐까 등이 레거시의 대표적 용례(用例)였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에 관한 한 레거시의 핵심은 역사의 평가인 것이다.

임기가 1년여 남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이 역사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문 대통령은 어떤 유산을 남기려는가, 후대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미 문 대통령도 이를 의식하고 분투 중인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문 대통령의 유산이나 업적을 꼽으라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취임 후 일성이 ‘일자리 대통령’이었지만 현실은 민망하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업종으로는 제조업 및 자영업자가 주로 종사하는 음식·숙박업, 연령층으로는 경제의 허리인 30, 40대 일자리가 급감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정책 실험인 소득주도 성장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자 정부는 세금주도 성장으로 대응했다. 4년간 중앙부처에서만 80조7000억원의 일자리 예산이 투입됐지만 ‘단기 세금 일자리’만 양산했다. 성장도 미흡했다. 취임 당시 2.8~2.9%였던 잠재성장률은 3년 후인 올해는 2%대 초반이나 1%대 후반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 확대는 방향이 맞지만 포퓰리즘적 운용과 과속으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훼손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좌초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천명했지만 북한은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보유국에 다가섰다.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은 문 정부 대북 정책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다. 검찰 개혁은 방향을 잃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은 온데 간데없어졌다. ‘살아 있는 권력’은 손 못 대게 하는 검찰 길들이기로 검찰 개혁이 변질됐다. 문 정부의 개혁이 다 이런 식이다. 근본 원인은 이중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자기편은 모두 옳고, 나쁜 쪽은 반대자라는 황당한 이분법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은 개혁 과정에서 자기편의 희생이 있을 수 있음을 각오했다. 자기편은 빼고 반대편만 치는 이중 잣대로 개혁이 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자기편 피는 절대 묻히지 않으려 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혹,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군 휴가 의혹 등이 생생한 예들이다. 검찰 개혁이 진정성을 의심받고 동력을 잃는 건 당연하다.

경제나 외교안보 등 정책 실패보다 더 부정적인 것은 따로 있다. 사회통합과 국민의 신념, 가치관에 미친 악영향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년의 날에 추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은 채 “우리는 청년들과 함께하고자 했고, 공정과 정의, 평등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와 국가의 근간이라고 할 공정과 정의의 개념을 이렇게 전도시킨 예가 있을까. 의료진 파업 과정에서 간호사를 추켜세우고 의사를 폄하하는 것 등에서 드러난 국민 편 가르기는 또 어떤가.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정부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의 표리부동과 국민 편 가르기를 특기로 삼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사회 구성원 간 공동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참여’를 창출하는 무형자산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온전할 리 없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첫 역사적 평가’라는 부제를 단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직 수행(The Presidency of Barack Obama)’이란 책이 프린스턴대 출판부에서 나온 게 2018년 초다. 오바마 퇴임 1년 후다. 문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해는 저무는데 경제, 안보 정책 등에서 ‘득점’하는 데는 자원과 시간의 제약이 크다. 문 대통령은 ‘표리부동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정부’라는 오명을 피하는 데 우선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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