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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걷고 머무르고 싶은 광화문광장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광장의 기원이 된 그리스 ‘고대 아고라’와 이탈리아 ‘포로 로마노’, 중세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광장, 프랑스대혁명을 목격한 파리 콩코르드광장, 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스페인 바르셀로나광장 등 유럽의 주요 도시 광장을 지난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답사했다. 유럽의 오래된 광장들을 걸으면서 인류 역사가 진화해온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광장에서 그리스·로마 문명이 잉태되고 민주주의가 시작됐으며, 중세인의 일상이 펼쳐지고 르네상스의 새 물결이 일었다. 광장은 도시의 중심이며 시민들의 삶의 무대였다.

한국은 광장의 역사가 짧고 광장 문화가 아직 정립돼 있지 않다. 하지만 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대회에서 승리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서울광장과 2016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운 촛불혁명의 광화문광장은 전 세계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역동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광장은 텅 빈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모이고 머무르며 채워지는 곳이다. 광장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고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특히 광화문광장은 서울 한복판에 있고 경복궁 등 주변 경관도 좋아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징적인 곳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혐오와 갈등으로 얼룩진 공간으로 변질돼 버렸다. 지난 8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복절 집회는 코로나19 재확산의 기폭제가 돼 많은 국민의 원성을 샀다. 똑같은 공간이지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광장은 새로운 화합과 활력의 도가니가 되기도 하고 폭력과 대결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일상화된 집회로 몸살을 앓아온 광화문 일대가 걷고 싶고 활동하기 편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역사공간으로서 현재 진행 중인 의정부 터 복원작업과 함께 광화문 월대 복원도 추진될 예정이다. 서울시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 서측 세종문화회관 쪽 차로를 없애고 공원형 광장이 조성된다. 대신 동측 차로는 이달부터 7~9차로로 확장해 양방향 통행이 가능하게 하고, 세종대로 사람숲길과 연결해 서울역부터 광화문까지 약 2.6㎞의 걷기 좋은 도심 보행거리를 완성한다. 광장의 중앙부는 열린 공간으로 유지해 백악산 등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고 주제별 쉼터도 마련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연말까지 주민 간담회, 전문가·시민 토론회 등 전방위 소통을 진행했다. 지역 주민들은 주말마다 반복되는 집회로 힘들어했고, 주변 상인들은 교통 흐름 단절로 매출이 급감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많은 시민들은 소음과 차량으로 가득한 광화문 거리에 나무와 꽃을 심어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유럽의 주요 도시 광장을 보더라도 주변 차로를 줄이고 보행공간을 넓혀 걷기 편한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서울시도 세종문화회관 쪽 서측 도로에 꽃과 나무를 심어 ‘도심 속 공원 같은 광장’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올해 6월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에서 85%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으로 답했다. 영국 런던의 경우 내셔널갤러리와 트라팔가광장 사이에 차로가 있었는데 이를 보행공간으로 바꾼 이후 광장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다고 한다. 서울시가 사직동, 청운효자동, 삼청동 등 광화문 일대 보행환경을 조성해 광장의 접근성을 개선하면 주변 상권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지역 주민과 시민들의 요구가 컸던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공원적 요소가 담긴 광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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