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카소’ 주류 사회를 먹칠하다

바스키아 국내展 내년 2월 7일까지

28년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흑인 낙서 미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롯데뮤지엄 제공

1977년 뉴욕 할렘가. 17세의 흑인 고교생 둘이 스프레이로 ‘SAMOⓒ’를 휘갈기며 낙서 하고 다녔다. 암호 같은 그 알파벳은 ‘흔해빠진 것은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이란다. 둘 중 하나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다. 익명으로 남고자 했던 친구와 달리 바스키아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1년 뒤 둘은 헤어졌다. 그리고 바스키아는 미술계의 스타, 그것도 슈퍼스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를 뛰어넘는 최고 낙찰가를 기록하고 있다.

‘검은 피카소’ ‘흑인 낙서 미술가’. 그 바스키아가 한국에 왔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하는 ‘장미셸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에서다. 그는 이 지구에 겨우 28년을 머물다 별이 됐다. 그럼에도 생의 마지막 8년 동안 폭발하는 열정으로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전시에는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도자), 사진 등 150여 점이 나왔다.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무제’(1982년 작, 나무 패널에 아크릴, 오일 스틱, 크레용, 종이 콜라주, 깃털). 롯데뮤지엄 제공

바스키아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여러 미술관에서 본 작품이 평생의 영감 원천이 됐다. 8살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수술했는데, 그것도 미술 자산이 됐다. 어머니는 그때 지루해하는 아들을 위해 해부학책을 선물했다.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삶과 죽음의 문제로 사유가 이어지게 됐다. 뼈와 해골, 신체기관 등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지속해서 등장하는 모티브가 됐다.

부모는 갈라섰다. 고교를 중퇴한 그는 독립해서 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본 건 큐레이터 겸 영화제작자 디에고 코르테즈였다. 그는 바스키아의 작품을 다량 구매해줬다. 코르테즈의 소개로 키스 해링, 제니 홀저, 키키 스미스 등 당대의 대표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그룹전 ‘더 타임스 스퀘어쇼’(1980년)에 참여했다. 그의 나이 겨우 20세 때였다. 1982년엔 첫 개인전을 열며 언더그라운드 낙서 미술가에서 미국 화단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이어 미국 최고 화랑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선 하루 만에 모든 작품이 팔려 나갔고,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 제전인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에 최연소로 참여했다.


‘빅토르 25448’(1987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 오일 스틱, 왁스, 크레용, 종이). 롯데뮤지엄 제공

당시 미국 미술계의 대부였던 앤디 워홀과의 만남은 작가 인생에 정점을 찍는 계기가 됐다. 바스키아의 재능을 알아본 워홀이 그를 키워주다시피 후원해 둘의 공동작업도 탄생했다. 하지만 1987년 아버지 같던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큰 충격을 받는다.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다 결국 이듬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거리 낙서를 하던 그는 어떻게 일약 미국 주류 미술사에 편입될 수 있었을까. 그의 정체성이 된 세이모(SAMOⓒ)는 십대들의 장난처럼 시작됐으나 안에는 주류미술계와 사회를 향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무질서하게 휘갈겨 쓴 듯한 글자와 이미지의 조합은 사회 전반의 모순적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조롱하는 강력한 목소리로 해석됐다.

바스키아 작품 세계가 갖는 힘은 낙서 같은 텍스트와 자유로운 드로잉의 결합, 그것을 지우고 반복하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 거기서 나오는 폭발적 에너지에 있다. 만화, 영화, 광고, 백과사전, 성경, 상품 등 다양한 요소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발췌해 사회의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영웅을 만들어낸다. 오려낸 이미지뿐 아니라 문짝, 거울 등 실제 물건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이것들이 스프레이와 유화물감, 파스텔, 크레용,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와 어우러져 동시다발적인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이 지향하는 것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내 작품에는 아프리카계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난 그들을 묘사한 그림이 흔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그는 흑인의 영웅이 되고자 했고 그렇게 됐다. 내년 2월 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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