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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철옹성 근로자’ 10%만 보호하는 노동법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풍경을 크게 바꿔 놓았다.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 역시 변했다. 대표적인 변화가 재택근무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5인 이상 기업의 49%가 재택근무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이 수치가 4.5%에 불과했으니 과히 폭발적인 증가라고 하겠다. 기업과 근로자의 재택근무에 대한 평가 역시 모두 호의적이다. 이번 고용부 조사에서 기업의 67%가 업무 효율성에 대해 긍정 평가를 했고, 근로자의 91%가 재택근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외생변수에 떠밀렸지만 익숙한 제도나 관행과 결별하면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이 열린다는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주요국에서는 이미 재택근무가 확산일로에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기업의 재택근무 활용 비율을 보면 미국은 둘 중 한 곳가량인 43%나 됐고, 프랑스(29%) 영국(27%) 일본(13%) 독일(12%) 등도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가고 있었다. 산업구조가 디지털 경제로 변화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로 부족해진 노동력 확보, 일·가정 병행에 대한 요구 등이 어우러진 배경이다.

우리만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당면과제를 외면해 온 것이 아닐까. 노동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노동시장이 오래전부터 중병 상태임은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노동시장 양극화, 이를 뚫기 위한 대기업 취업 재수·삼수, 기껏 입사해도 ‘사오정’(45세 정년)으로 풍자되는 고용불안, 노동시장의 경직성, 여기에 그들만의 철옹성을 높이 쌓는 노동조합의 강성투쟁 등이 그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때 하르츠 개혁을 단행했다. 실업자의 적극적 구직활동을 유인하는 한편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그 결과 10%가 넘던 실업률이 5% 밑으로 떨어지는 등 독일이 유럽연합(EU)의 지도적 국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일본 역시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노동 개혁에 나섰다.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면서도 유연성을 보장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며, 고령 인력 취업을 촉진하는 등의 내용이다.

최근 노동 개혁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해 초 이해당사자인 노사정이 합의한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노동 개혁마저 참으로 지난하다. 이번 역시 한편에서는 4차 산업혁명 등 산업구조 변화에 발맞춰 필요한 개혁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벌써 선 긋기에 나서고 있어 갑론을박만 무성할 뿐 기대를 어둡게 한다.

노동계의 반발 역시 거세다. 그러나 노동 개혁은 결코 근로자를 더 어렵게 하는 게 아니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또 노동 개혁은 결코 ‘쉬운 해고’와 동의어가 될 수도 없다. 노동유연성은 해고만이 아니라 임금, 근로시간, 직무의 유연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노동 개혁은 공장 제조업 시대에 설계된 낡은 노동법을 서비스·디지털화된 경제구조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또 철옹성 안의 10% 근로자 때문에 밖에 있는 90% 근로자나 예비근로자가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노동법은 아무리 여미고 덧입어도 철옹성 안 근로자만 보호한다. 지금껏 그들은 연공서열식 임금, 똑같이 시작하고 마치는 근로시간, 발전 없는 직무능력 평가 등에 의해 보호받았다. 그러나 재택근무 실험이 성공했듯 노동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노동시장의 여러 중병을 치유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여러 변화가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고 보다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해 본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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