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시는 무서운 세월을 견디는 형식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허수경 지음, 난다, 168쪽, 1만3000원

시인 허수경은 박재삼의 시 ‘과일가게 앞에서’를 읽고 천국을 떠올린다. 붉고, 노랗고, 푸른 빛깔이 주는 화려함과 뒤이어 전해지는 과일의 맛과 향기에 “삶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화려해지고 달콤해진다”고 적었다. 허수경의 시 해설집이자 세 번째 유고집인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에는 이처럼 “무서운 세월을 견디는 형식”으로서의 시에 대한 그의 애정이 깃들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다. 국내에 번역된 글릭의 시는 많지 않다. 내가 읽은 건 ‘애도’와 ‘야생붓꽃’이다. 고작해야 두 편이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내 바닥난 영혼이 충전됐다. ‘애도’를 읽고 나서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힘껏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랬다. 지금 이렇게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쓰인 ‘애도’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들을 질투하는 내용의 시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생애를 한목소리로 칭송한다.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한껏 치켜세운다. 죽음이 지나가자 살아생전 분분했던 평가들은 완전무결한 ‘좋음’으로 애도된다.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어서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자 죽은 사람의 마음에는 그들을 향한 극렬한 질투심이 솟는다. 그들의 스카프를 휘날리게 하는 바람, 그들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는 햇살. 죽은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지난 삶에 대한 상찬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금 순간이다.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찬란한 순간을 죽은 사람은 맹렬하게 원한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면 갑갑하던 실내 공기가 바뀌듯 글릭의 시를 읽고 나니 답답한 내 마음속의 공기 흐름도 꽤나 원활해진 것 같았다. 낭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느껴 보고 싶은 기분이 정체되어 있는 마음속 길들에 여유를 준 걸까. 막혀 있던 길목이 뚫리니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시는 “무서운 세월을 견디는 형식”이라는 말에는 조금도 틀린 데가 없다. 틀린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를 규정하는 어떤 말보다 더 맞는 말이다. 이런 근사한 말을 한 사람은 시인 허수경이다. 내 10월의 책으로 허수경 시인의 시 해설집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를 정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자신을 위해서 아주 천천히 이 책을 읽고 있다.


요즘은 예전만큼 많이 나오지 않지만 시 해설집은 사랑받는 출판물이었다. 무서운 세월을 견디는 숱한 형식들을 한데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엮고 해설한 이가 허수경 시인이라면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을 이유로 충분하다. 박재삼의 시 ‘과일가게 앞에서’를 읽는 허수경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다 ‘과일가게’라는 단어를 다시 만났다. 시인은 과일가게에서 “천국”을 떠올린다. “달고도 신 향기. 붉고, 노랗고, 푸른 빛깔들 앞에서 삶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화려해지고 달콤해진다. 밤 골목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설렘의 바람에 취하여 모든 것에 희망이 보이고 초라하던 것들이 따뜻한 모습으로 뒤바뀐다.” 향기와 색깔로 들썩이는 과일가게의 풍경이 캄캄한 골목을 희망으로 밝힌다. 불이 들어오자 골목에 온기가 돈다. “무서운 세월을 견디”기 위해 우리 삶은 시라는 형식을 필요로 한다. 허수경을 통과한 ‘과일가게 옆에서’를 읽고 나서 우리 집 앞 과일 가게는 천국으로 변했다. 오늘 저녁 천국에 들를 것이다.

서효인 시인이 소개한 ‘윤곽’을 읽고 나서 허수경 시인의 시 해설집을 읽기로 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윤곽’의 주인공이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그들 각자가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는 삶의 경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허수경 시인은 시를 통해 그들이 선택한 견딤의 형식을 읽는다. 그리고 나는 시를 읽는 허수경을 읽는다. “모든 당신에게 이 시의 순간을 바칩니다.” 시의 순간, 시라는 순간들이 무서운 삶을 견디는 형식이 된다. 긴 삶을 지탱하는 힘은 순간에 들어 있다.

거대한 슬픔의 파도에 맞서게 된 이를 나도 알고 있다. 슬픔의 모양과 크기, 슬픔의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려 애쓰고 자신의 슬픔을 타인에게 설명하려 애쓰는 그를 나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 거대한 슬픔의 파도는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덮쳐 온다. 어떤 존재들은 자신의 윤곽을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다. 들키지 않으려는 윤곽을 기어이 파악하려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던 그는 이제 알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 윤곽에서 눈을 돌리고 순간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이 그토록 질투하던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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