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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수서역 벽화 ‘뱅크시 짝퉁’ 논란을 보며


수서고속철(SRT) 서울 수서역 승강장에 그려진 벽화가 ‘뱅크시 짝퉁’ 논란에 휘말렸다. 미술 작가 이태호씨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됐다. 6번 승강장 벽의 총 길이 200m 초대형 사이즈에 약 30점의 이미지가 이어져 있다. 이 가운데 2점이 뱅크시 대표작인 ‘하녀’(Sweep It Under The Carpet, 2006)와 ‘풍선과 함께 나는 소녀’(Flying Balloons Girl, 2005)를 빼다박았다는 것이다. 문제의 벽화가 S대 회화과 Y교수 지도 아래 대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새삼 알려지며 논란은 커졌다. 지난 6월 ㈜SR 권태명 대표이사와 S대 총장까지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까지 가진 벽화인데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오마주, 콜라보 등으로 퉁치려 할 겁니다. ㅋㅋ.” “수서역에 미대생 재능기부라니(뭐 때문에 수익 좋은 기업에 수입 없는 미대생이 재능기부를? 청년 착취가 학교와 기업의 협약으로 버젓이 이뤄지네.” 댓글엔 냉소와 개탄이 넘쳤다. Y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래피티에서 제일 유명한 이가 뱅크시 아니냐. 약간 패러디나 오마주의 느낌으로 했다”고 말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영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지하철 역사나 건물 외벽에 낙서를 통해 사회에 저항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나온 그의 작품이 104만 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 틀에 숨겨놓은 소형 분쇄기가 가동되며 작품이 파쇄됐던 사건은 유명하다. 하지만 신원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한 카드사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패소한 바 있다.

차용을 특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면서 표절과 패러디, 표절과 오마주 사이 경계는 모호하다. 패러디는 유명한 원작을 풍자하거나 사회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원작의 문체나 어구 등을 흉내내면서도 원작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말한다. 오마주의 경우도 원작의 구도를 가져오지만 자신만의 해석과 필치가 가미된다. 예컨대 고흐가 밀레를 오마주해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나.

뱅크시의 ‘하녀’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청소하는 여성이 들친 커튼 아래 붉은 벽돌이 나오는데, 수서역 벽화는 벽돌 대신 파도를 넣은 게 차이나는 정도다. ‘풍선과 함께 나는 소녀’는 뱅크시가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장벽에 그린 것으로, 여러 개 풍선에 매달려 하늘로 날아가는 소녀를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수서역 벽화는 하늘이 곁들여져 있을 뿐이다. 도대체 뭘 패러디했는지, 어떤 면에서 오마주인지 얼른 이해가 안 된다. 패러디나 오마주의 ‘느낌으로’ 해서 그런가.

누군가는 이번 작품은 법적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 미학의 문제라고 봤다. 나는 동시에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드러낸 사건이라 본다. 공공미술 하면 환경미화 하듯 벽에 예쁜 그림 그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번 벽화의 발주자인 SR이 그랬다. SR 관계자는 “대국민 볼거리 제공 차원에서 학교와 저희가 상생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술’이 아니라 그저 ‘볼거리’였다. 그러니 창의적인 미술 행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재능기부’할 학교를 수소문했던 것이다.

동네 카페도 아니고 공기업에서 공공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공공미술 전문가 P씨가 “한국의 공공미술이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인 것은 공공 부문이 제 역할을 못해 그렇다”고 토로하던 게 기억난다. SR이 또 사례를 보탠 것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두 가지다. 좋지 않은 사례로 보존할 것인가. 지우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 것인가. 미술계 의견을 구했으면 한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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