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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사회경제 위기때면 부흥… K팝처럼 해외서 통할 것”

[인터뷰 사이] ‘트로트 박사’ 손민정 교원대 교수

손민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꼽은 ‘최애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는 책 ‘트로트의 정치학’에서 ‘트로트는 3분의 인생 드라마, 인생의 쓴맛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느낄 수 없는 음악, 꺾어 넘어가는 창법처럼 굴곡 있는 인생을 극복해가는 한국인의 끈기를 담은 음악, 슬프고도 흥겨운 음악’이라고 썼다. 청주=서영희 기자

“요즘 트로트 열풍이요? 아, 기분 좋죠. 지금 같은 트로트의 부활을 예상했냐고요? 이 정도까지는 생각 못했죠. 저 또한 놀랍습니다. 하지만 절대 트로트가 죽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어요.”

손민정(48) 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는 ‘트로트 박사’다. 서울대 작곡이론학과와 서양음악학 석사를 거쳐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트로트를 주제로 음악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트로트의 정치학’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예전엔 트로트를 연구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었어요. 학술발표회에서 ‘트로트가 이렇게 진지한 이론과 토론을 필요로 하는 장르인가’라는 질문도 받았죠. 그런데 며칠 전 홍콩 신문이 트로트 붐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내가 제대로 공부했구나, 생각합니다.”

-첫 질문은 나훈아 신드롬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필이 2013년 ‘바운스’로 음악방송 1위를 했을 때 그만큼 완벽한 거장의 컴백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나훈아에 대한 열광은 그때를 뛰어넘는 것 같다.

“조용필은 젊은층을 겨냥해 EDM 장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다. 지금의 나훈아는 트로트의 부흥이라는 문화적 현상의 흐름을 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영세한 트로트계에서 나훈아가 다른 가수가 감히 할 수 없는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준히 만들어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트로트를 격상시키려는 그분의 노력이 트로트 르네상스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공연도 대단했지만 나훈아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됐다.

“솔직히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싶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이용하는데.”

-‘트로트의 정치학’을 쓰신 분이 정치적인 해석과 거리를 두려는 건가.

“책에서 말한 정치학은 트로트라는 음악이 걸어온 길, 음악사의 역학, 거기에 얽힌 한국인의 역동적인 삶을 말한 것이다. 경계하고 싶은 것은 트로트가 자칫 보수적인 음악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처럼 삶에 안주하는 안일함, 퇴행성, 체념, 초탈의 정서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런데 꼭 민중가요처럼 매일 투쟁해야 하나. 삶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투쟁이고, 그 속에서 위안을 준 것이 트로트라고 생각한다. 트로트 자체가 여러 논란 속에서 100년 가까이 버텨내고 살아남은 장르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시절 조교로 강의를 맡은 수업시간에 나훈아와 남진 음악을 들려줬다고 했는데.

“‘록 음악의 역사’ 수업이었는데 학생들이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물었다. 당시 가장 핫하던 아이돌 그룹 노래를 들려줬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팝과 너무 비슷했던 거다. 그래서 한국적인 음악을 찾다가 나훈아의 ‘모르고’와 남진의 ‘둥지’를 틀어줬더니 분위기가 좋아지는 거다. 목소리가 남성적이고 매력적이라고 감탄하더라.”

-정통 클래식 교육 코스를 밟아왔는데, 연구를 하면서 트로트의 ‘찐팬’이 된 건가.

“대학 때까지는 클래식 음악이 전부인 줄 알았다.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작곡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엘리트 예술에 대한 동경이었고, 문화 사대주의가 심했던 거다. 그러다 캠퍼스 커플이 된 남편이 ‘위대한 음악가’라면서 나훈아를 좋아했다. 취향이 너무 달라 궁금해하면서 트로트에 눈을 뜨게 됐고, 음악인류학을 공부하며 기존 음악관이 완전히 깨졌다.”

-요즘 트로트의 인기를 어떻게 보나. 많은 분석이 나왔지만 ‘쉽고 젊어진 트로트’ ‘30년 넘게 이어진 아이돌 중심 음악에 대한 피로감’ 정도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선 역동적인 실버세대 출현을 꼽고 싶다. 예전 중년층에 비해 지금의 신중년층은 취향에 대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한다. 경제력도 갖추고 있어서 자신들이 즐기는 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또 하나는 시청자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투표권을 갖게 되면서 ‘내가 키운 가수’라는 관계가 설정되고 대리만족을 느끼며 관심이 더 커졌다. 무엇보다 트로트가 새로운 소비층인 10대를 아우르게 됐다. 예전엔 나이에 따라 즐기는 음악이 나뉘었다면 이제는 나이 불문하고 음악을 즐기는 건강한 문화가 돼가고 있다. 거기에 시대적인 상황도 트로트가 문화현상이 되기에 알맞았다.”

-시대적인 상황이라면.

“트로트의 첫 번째 부활 조짐은 1998년에 있었다. 그때 40년대 트로트들을 각색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홍도야 울지 마라’ 같은 신파악극이 쏟아졌다. 트로트를 신파라고 하는데, 신파성이라는 건 대놓고 직설적이고 대놓고 외설적인 리얼리즘이기도 하다. 신파악극을 영어로 하면 ‘멜로드라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얻는다는 외국 논문이 있다. 98년은 IMF 때였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겪고 있지 않나. 경제적으로는 코로나 이전부터 힘들었고.”


-지금이 트로트의 전성기라고 보나.

“음악평론가 임진모 선생은 많은 사람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아주 큰 히트곡이 나와야 하는데 임영웅 송가인 같은 스타에 의존하고 있고, 아직 빅히트송이 없으니 제대로 된 전성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셨다. 그분 입장에서는 덜 시원하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연구를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지난 20년을 보자면 지금의 반응은 어마어마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해도 트로트 관련 검색량이 2018년 3만7230건에서 2019년 37만3983건으로 10배 늘어났고, 작년에 발표된 신곡 중 절반 이상이 트로트 관련 곡이었다고 한다. 데이터상으로도 트로트 시대가 열렸다.”

-트로트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왜색 논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트로트를 엔카(演歌)의 아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방어적인 민족주의에서 헤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에게 트로트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걸 왜 부인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트로트는 일본과 서양음악의 영향, 한국적인 가창이 모여 형성됐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록 발라드 디스코 등 새로 유행하는 음악의 특징을 흡수하면서 계속 발전했다. 또 일본 음악과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봐야 한다. ‘엔카의 아버지’라는 고가 마사오는 가야금의 슬픈 곡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적인 가창’은 꺾는 걸 말하는 건가.

“유학 시절 ‘열린음악회’를 보고 대학원생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는데, 가장 주목했던 게 트로트의 가창방식이었다. 꺾고 뒤집고 콧소리를 내고 떨고 가성으로 넘어가고…. 설운도씨 인터뷰를 했을 때 저에게 트로트는 가창방식이 중요하다면서 그 자리에서 댄스곡부터 팝송까지 죄다 트로트식으로 바꿔 불러보였다. 꺾어지는 트로트의 가창방식은 남성은 나훈아에서, 여성은 주현미에서 절정을 이뤘다.”

-엔카는 일본에서 어엿한 학문으로 자리잡고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고 들었다.

“60년대 말 일본에서 니혼진론(日本人論)이란 문화 민족주의운동이 벌어졌다. 엔카라는 말도 그때 비로소 만들어져 80년대에 확립이 됐다. 메이지유신 때 엔카라는 학생들의 운동가가 있었지만 이미 사라졌고, 현대의 엔카와는 전혀 다른 장르였다. 그런데 일본은 옛 용어를 가져와 자신들이 즐기는 음악이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엔카는 일본의 혼’이라며 장르화시켰다. 그들에겐 자랑스러운 장르이기 때문에 학문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연구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대부분이 듣는 트로트는 오랫동안 비하돼 왔다. 그런 자기비하가 제 울분 중 하나였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한 젊은층이 트로트를 즐기는 걸 보면 이제 트로트에 대한 정통성 시비는 사라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 제자들이 미래의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들인데, 학생들은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다. 흥나고 신나는 음악, 노래방에 가면 한두 곡쯤은 해야 분위기를 맞출 수 있는 음악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여러 음악이 존재하고, 음악의 가치는 다양하며, 음악에는 우열이 없다. 그런데 음악 수업에는 여전히 조선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연주되던 유럽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서민 음악이라는 점에서 트로트와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컨트리도 미국 대중음악계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다. 트로트는 컨트리와 다른 위상을 갖게 될까.

“음악산업을 좌우하는 건 언제나 10대라서 컨트리나 트로트가 정점에 서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트로트가 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떠나 편견 없이 남녀노소가 즐기는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엔 이제 트로트가 식상하다는 질문도 받는다. 이렇게 끓어올랐으니 당연히 식상할 수 있다. 식상해지는 단계가 오면 트로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변화를 하게 될 것이다.”

-90년대 말 ‘테크노 뽕짝’을 선보였던 신바람 이박사가 일본에 진출해 부도칸에서 공연하고 신인상을 탔던 기억이 있다. 트로트도 K팝처럼 해외에서 통할까.

“외국인들이 트로트가 트로트여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트로트가 한국인의 음악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인의 문화적 감성과 역량은 이제 믿고 보는 보증수표처럼 됐다. 한국인이 좋아하고 주목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힘이 실린다고 본다. 확장성은 충분히 있다.”

청주=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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