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까지 美서 이탈리아인은 ‘백인’이 아니었다

[책과 길] 누가 백인인가? / 진구섭 지음 / 푸른역사, 332쪽, 1만8000원

1891년 3월 미국 뉴올리언스시 광장에 모인 군중을 묘사한 신문 삽화. 8000여명의 군중은 경찰서장 살해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탈리아인 11명이 무죄를 선고받자 이들에 대한 단죄를 요구했다. “데고(Dago·이탈리아 등 남유럽인에 대한 속어)의 목을 매라” 같은 구호를 외치던 군중은 무장한 자경단을 앞세우고 급기야 교도소를 습격한다. 자경단은 수감돼있던 이탈리아인 11명을 찾아 모두 살해했다. 이밖에 1899년 루이지애나에서도 이탈리아인 5명이 집단 린칭으로 사망하는 등 1880년부터 1920년까지 모두 49명의 이탈리아인이 집단 린칭으로 목숨을 잃었다. 푸른역사 제공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 일가를 소재로 한 영화 ‘대부(Godfather)’ 초반. 돈 콜레오네가 대자(代子)인 영화배우의 배역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집안 변호사를 영화 제작자에게 보낸다. 제작자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결국 받아들이지만 처음엔 당차게 거절한다.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남유럽인을 경멸하는 속어 ‘데고(Dago)’ ‘기니아(Gunea)’ ‘웝(Wop)’ ‘그리즈볼(Greasebal)’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책 ‘누가 백인인가?’는 미국에서 인종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추적해 까발리는 책이다. ‘만들어졌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인종이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집단 간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면”이라고 정의한다. 흑인 등 소수인종뿐 아니라 백인 역시 마찬가지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의 장면은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비하를 넘어 그때까지 이탈리아인이 완전한 백인의 범주에 들지 못한 시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백인의 외연 확대


책은 미국의 인종 문제를 검토하면서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같은 소수인종을 제쳐두고 백인의 정체성을 우선 살펴본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주류로 평가된 백인 역시 유럽의 출신 지역별로 다른 취급을 받아왔음을 알게 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 백인의 범위는 ‘영국계 기독교인’만을 포함했다가 점차 유럽의 다른 지역 출신들도 백인에 포함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연못의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 순차적으로 확장됐다”고 표현한다.

이는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앵글로 색슨만을 “순수한 백인”으로 규정하고 독일인, 프랑스인, 아일랜드인, 북유럽인 등을 다르게 인식한 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790년 통과된 ‘국적법’이 ‘자유 백인’에게만 시민권을 허용한 것 역시 사유재산을 소유한 백인으로만 시민권을 제한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1790년대부터 1840년대 중반 사이 참정권 확대를 위해 백인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등 ‘구 이민자’로 불리던 이들이 시민권을 얻어 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가 1880년대부터 남동부유럽 출신의 ‘새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는 ‘인종 습격’으로 새로운 긴장이 조성된다. 이들은 피부색 등이 구 이민자들과 달라 ‘중간 인종(In-between race)’ ‘견습 백인(probationary white)’ 등으로 불리며 백인에 포섭되지 못한다.

책은 새 이민자의 입지를 알 수 있는 사례로 1891년 3월 14일의 집단 린치 사건을 소개한다. 뉴올리언스 경찰서장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탈리아인 11명이 무죄를 선고 받자 8000여명의 군중이 교도소로 쳐들어간 사건이다. 흥분한 군중은 교도소를 습격해 무죄를 선고받은 11명을 끌어내 모두 살해했다. ‘웃픈’ 사례도 있다. 1922년 흑인여성과 결혼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가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을 위반해 기소됐으나 재판에서 “이탈리아인은 온전한 백인이 아니다”며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책은 새 이민자들이 백인으로 편입된 시기가 대체로 제2차세계대전 전후, 20세기 중반까지라고 설명한다. 노조가 전국적으로 결성되면서 새 이민자들이 대거 포함됐고, 2차 대전 참전용사에게 주택 구매를 지원하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백인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소수인종의 탄생

미국의 대표적인 소수인종인 흑인은 북미 영국 식민지 초기부터 모두 노예 취급을 받진 않았다. 1670년까진 제도화된 노예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이 노예 신분으로 북미 대륙에 도착했더라도 백인과 마찬가지로 계약노동자로 일하다 자유를 얻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결혼 후 부유한 농장주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인종 간 결혼도 큰 흉이 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했을 때 17세기 후반까지 미국에서 인종 개념은 뚜렷하게 자리 잡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상황이 달라진 건 1676년 ‘나다니엘 베이컨의 반란’ 때문이다. 버지니아주의 거의 모든 노동자가 가담한 이 반란은 식민지 영토 전역으로 확산됐다. 인종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던 터라 흑인과 백인은 반란에 함께 했다. 하지만 농장주들에겐 그 사실이 충격이자 공포였다. 둘을 갈라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농장주를 비롯한 지배층은 남성 지주계층에만 허용한 참정권 요건을 완화했다. 백인 노동자를 백인 지배층과 이해를 공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인종 개념 역시 이즈음 등장한다. 백인이라는 용어도 1680년대 후반 식민지 전역에 퍼진다. 흑인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아시아인을 ‘모범 소수인종’으로 추어올린 것과 유사하게 양측을 분리하려 한 것이다.

인종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종교, 과학, 법은 그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제공했다. 미국 남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흑인과 노예성을 연결시키는 성서 해석을 했고, 의학자 새뮤얼 모튼은 두개골을 수집해 인종 간 지능의 차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백인라는 용어가 코카시안의 피 외에는 아무런 다른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한 ‘노예보전법’이 1967년까지 유지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법과 법원도 인종의 구획을 공고히 하는 도구였다.

책은 1885년 ‘록 스프링스 대학살’(아시안), 1930년대 ‘멕시코인 대추방작전’(히스패닉)처럼 인종별 수난사와 각 인종 개념도 별도 챕터로 다루고 있다. 이중 한국인이 미국 정착과정에 당한 고난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룬다. 1908년 LA업랜드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막사 습격 사건, 1913년 LA 외곽 헤멧 살구농장으로 일하러 갔던 한국인 노동자 11명이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백인들에게 쫓겨난 사건 등 이민 초기 차별의 역사가 담겼다. ‘조선청년’ 차의석이 1921년 시민권을 얻기 위해 진행한 법정 투쟁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저자는 책의 ‘끝머리’에서 한국사회 역시 “인종 갈등 무풍지대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 사례를 성찰한 저자의 다음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참 이상한 게, 타 집단에 대한 편견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편견이 주입되면 생각과 습관과 영혼이 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늘 속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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