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전기차 시장 열리는데… LG화학·SK이노 9년째 내전 중

[논설위원의 이슈&톡] 무한경쟁 시대 글로벌 1·6위 소송전 눈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68년 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을 만나 “우리도 전자 사업을 하려고 하네”라고 운을 뗐다. 금성사가 국내 가전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구 회장은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삼성과 LG의 길고 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구 회장과 이 회장은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죽마고우다. 자녀 혼례로 맺어진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로 두 집안은 최대 라이벌이 됐다.

삼성이 일본 산요와 합작해 삼성전자를 설립하겠다고 신청하자 금성사는 ‘매판조립산업’이라고 비난하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당시 전자공업협동조합 산하 59개 업체가 ‘삼성전자 인가는 부당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전량 해외 수출’ 조건으로 삼성전자를 허가했다. 그때 삼성전자 설립이 무산됐다면 현재의 초일류 기업 삼성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이 격화되자 삼성과 LG의 악연이 다시 회자된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갈등을 예로 들며 “LG화학이 사다리를 걷어차 국내 경쟁 기업의 싹을 자르려 한다”고 비난하고, LG화학은 “부도덕한 영업비밀 침해를 막기 위한 자구책일 뿐”이라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싸움의 무대는 전기차 배터리라는 ‘황금어장’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463만대에서 2025년 2080만대로 늘고,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도 같은 기간 22조원에서 155조원대로 커질 전망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1~8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판매에서 24.6%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CATL(24.0%)과 일본 파나소닉(19.2%), 삼성SDI(6.3%)가 뒤를 이었고 SK이노베이션(4.2%)은 6위를 기록했다. 한국 3사의 시장 점유율은 올해 35.1%로 높아졌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테슬라, 르노, 포르쉐, 아우디, 포드, BMW, 기아차, 현대차 등 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값의 40%가량을 차지하는데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각국 기업들의 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전기차업계 1위 테슬라는 최근 “LG, 파나소닉, CATL의 배터리 공급을 늘리겠지만, 그래도 2022년엔 배터리 부족이 심각할 것”이라며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은 자국의 보조금 정책을 기반으로 급성장해 세계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CATL은 독일에서 첫 해외 배터리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BMW는 2031년까지 삼성SDI 공급 물량의 배 이상을 CATL에 주문했다. 파나소닉과 동맹 관계인 일본 도요타는 CATL, BYD 등과의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자체 전고체 전지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배터리 공장 건설에 나서는 등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배터리산업은 한 번 기술 격차가 벌어지면 추격이 어려워 향후 몇 년 안에 6~7개 업체의 과점 형태가 고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LG 구광모 회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과 손을 잡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3개 기업이 글로벌 상위 6개 업체에 속한 배터리 제조 강국이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분야는 우리나라의 효자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세계 1위 LG화학과 6위 SK이노베이션은 내전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LG화학은 일찌감치 미국 GM의 쉐보레와 포드 전기차 ‘포커스’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기술력을 과시한 배터리업계 선두주자다. SK이노베이션도 2009년 다임러그룹의 하이브리드 트럭에 이어 2011년 벤츠의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2010년 국내 최초 양산형 순수 전기차인 현대차 ‘블루온’에도 SK 배터리가 탑재됐다.


그러나 두 기업은 2011년부터 배터리 전쟁을 시작하며 앙숙이 됐다. LG화학은 2011년 12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3년 만에 합의 종결됐다. 그럼에도 LG화학은 지난해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등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다시 제소했다.

LG화학은 SK가 인력 빼가기로 얻은 영업비밀로 폭스바겐, 포드 등으로부터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내 LG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SK 측은 “우리도 이미 충분한 기술을 갖고 있고, 배터리 기술은 LG 인력 몇 명 영입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고 일축했다. LG는 또 “SK가 LG의 경력자를 영입하면서 배터리 레시피(제조비법) 등을 빼내고, 소송 증거를 인멸했다”고 주장하지만 SK는 “LG가 영업비밀 침해 증거를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재계는 지금까지 양측의 소송 비용만 4500억원에 달하며, 싸움이 계속되면 2조원 안팎으로 늘어나 미국 로펌 배만 불리고, 혼란을 틈타 중국 등 경쟁국 기업들이 수주를 따내 어부지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LG는 “글로벌 기업 간 소송은 소모전이 아니라 실력을 정당하게 인정받는 방법”이라며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국 기업들의 기술탈취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이 ITC에 제기한 소송은 열흘 후인 오는 26일 판결이 내려진다. LG와 SK는 서로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물밑 협상에서는 LG가 합의금으로 2조원 이상을 요구하고, SK는 그런 금액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라는 꼴이라며 ‘수용불가’로 맞서고 있다. LG는 “조기 패소 판결을 받은 SK가 합의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ITC 판결 후에도 지루한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배터리업계가 요동치는 시점에 LG와 SK가 서로 싸우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라며 “조속히 분쟁을 종결짓지 않으면 향후 초래될 한국 배터리업계의 경쟁력 추락에 대해 누군가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석철 대외협력국 기획담당 부국장 겸 논설위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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