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속 세계가 외롭고 지친 이들에게 응원 건네길…”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 작가이자 동명 원작 소설 작가 정세랑 인터뷰

소설가 정세랑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엄숙하지 않고, 어렵지 않은 문학. 소설가 정세랑의 방향성은 간단하다. 묵직한 글이 있으면 가벼운 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곤한 날에는 다정한 글을 읽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공상과학, 로맨스, 호러를 넘나들며 ‘재미있는’ 글을 썼다.

그가 신예 작가였던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문단에서 이런 소설들은 비주류였다. “너무 가볍다”는 시선이 주변을 맴돌았지만, 뚝심 있게 오로지 쾌감을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그는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 됐다. 5년 전 출간한 ‘보건교사 안은영’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정세랑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내 작품 속 세계가 외롭고 지친 이들에게 응원을 건네길 바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대본도 집필했다. 드라마는 고등학교 보건교사 은영이 욕망의 잔여물인 젤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학생들을 구하는 코믹 히어로물이다. 정세랑은 “대본은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축제나 체육대회도 열고 싶었는데 ‘영상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정세랑이 만든 은영은 한국 콘텐츠에서 드물었던 강력한 여성 캐릭터다. 주체적인 은영의 모습이 여성 서사의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은영은 여느 히어로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다. 누군가를 구하는 운명을 귀찮아하고, 이런 상황들에 조금은 지쳐있다. 하지만 오염된 젤리가 나타나면 무지개칼과 비비탄총을 망설임 없이 꺼내든다.

소설가 정세랑. 넷플릭스 제공

은영은 정세랑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2010년 그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투잡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부터다. 은영의 ‘본업’을 보건교사로 설정한 이유는 사범대를 졸업한 그의 지인 대부분이 교사여서다.

학생들에게 무심한 것 같은데, 애정이 담긴 지인들의 속내를 확인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은은하게 지속하는 열정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는 ‘심드렁하지만, 심지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겠다’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냉소적이지만 정의로운 캐릭터 은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히어로물에는 모두가 탐낼 능력을 지닌 영웅이 등장했지만 ‘정세랑 월드’는 다르다.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능력을 지닌다. 오해를 받아도 묵묵히 약자를 돕는 은영을 통해 영웅이 지니는 두려움을 말하고 싶었다. 정세랑은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면…”이라는 은영의 대사를 쓰면서 그가 느낄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마지막 보루가 돼야만 하는 이의 내면은 어떨까. 드라마 속 은영을 소설보다 더 차갑게 그린 것은 대본을 쓰며 새삼 깨달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의 내면을 부각하고 싶어서였다.

이같은 고민은 정세랑의 다른 작품에서도 묻어난다. “여린 방식으로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서사를 좋아해요. 그래서 특히 여성이 장식이 아닌 특정 역할을 맡는 이야기를 선호하죠. 경쟁 사회에서는 이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쏠리지만,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옳은 길을 가는 이들이 더 매력 있지 않나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얼른 꺼내고 싶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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