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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보화와 진주의 비유(2)

마태복음 13장 44~52절


이 비유에 등장하는 보화는 분명 땅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묻혀있다면 누군가 그 땅을 경작해야만 보화를 발견할 수 있다. 남의 땅에서 경작하는 사람이라면 종이다. 그럼 발견자가 종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발견자가 나중에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밭을 샀다고 했는데 종은 자기 소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종은 절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유추해 보면 누군가 남의 땅에서 경작하다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가 가려진 것을 보고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누군가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집으로 달려가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그 보화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 그렇다. 모든 사람의 눈에 흔하게 보이지만, 사람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지금 이 땅에 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힘과 권세, 위엄이 뛰어난 형태로 올 것을 기대했다. 그 능력으로 현재 자신들을 압제하는 로마군을 무찌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에 온 하나님 나라(천국)로 상징되는 예수님은, 그리 매력적인 배경을 가지지 않았다. 정치인도 부자도 율법 학자도 아닌 그저 한낱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통해 로마로부터 구원받고, 그간 고통에 만족스러운 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일을 능히 해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나마 기대를 하고 좇았던 사람들의 바람을 뒤로 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아무 가치 없어 보이는 모습.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마치 밭에 그냥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보화와 똑같다. 이 상황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은 그렇게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신자와 불신자의 삶이 크게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신자라고 해서 세상의 복과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는 시각은 당시 밭에 놓여 있는 보화를 보는 시각과 너무 비슷하다. 아무런 매력이 없기에 굳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불하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와 있는 천국,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천국의 가치는 그런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않다. 생명에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 성경은 그것을 약속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세가 아니다. 공기이다. 공기가 있어야 사는데, 평소에 공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가치와 천국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사람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 성공으로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에게 보상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며 가장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 재산을 팔아 보화를 산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신자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세상의 그 어떤 부와 권세와도 예수님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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