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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죽음을 대하는 자세


얼마 전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한원주 권사는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마지막 순간까지 중증 치매 환자들을 돌보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란 세 마디 말을 남기고 떠났다. 2018년 별세한 ‘목회자들의 목회자’ 유진 피터슨 목사가 남긴 마지막 말은 ‘레츠 고(Let’s go·가자)’였다. 천상병 시인은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다.

어느 죽음인들 슬프지 않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 악착같이 발붙이고 하루 1분1초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게 범인(凡人)들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품고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순간에 소풍 나온 이 세상과 쿨하게 이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진다.

18년 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슬픔과 회한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슬픔 속에 빠져 있는 우리들을 데리고 어머니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다. 아버지를 차가운 땅에 묻은 지 며칠 뒤 교회에 가는 어머니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홀연히 아버지를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천국에서 만날 건데 너무 슬퍼하지 말자며 스스로와 우리들을 다독이셨다. 인간인지라 이별이 서운하고 슬프지만 천국의 실재를 1도 의심하지 않으셨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죽음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늙은 부모 놔두고 앞서가는 자식의 죽음이야 오죽하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박완서는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순전히 하느님에 대한 부정과 회의와 포악과 저주로 일관돼 있었다”며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분조차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적었다.

미국에서 암투병 중이던 차남 이범 집사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천국환송예배에서 나눈 감사 메시지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목사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를 따라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렸다.

아들이 지독한 암의 통증에서 해방돼 영광의 나라 천국에 입성한 것을 감사했다.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 해주신 것도 고마워했다. 아들의 암투병을 통해 수많은 암환자들의 고통, 그리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부모들의 고통과 연대하게 된 것도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 독일계 개혁파 칼 바르트는 1941년 알프스산맥 등반 중 추락사한 스무 살의 둘째 아들 로베르트 마티아스 바르트의 장례 예배 때 이런 설교를 했다.

‘우리가 지금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 속에서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으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린도전서 13장 12절)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삶의 시간인 ‘지금’과 죽은 이후의 시간인 ‘그때’는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그때를 함께 묶으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곳에서의 죽음은 더 이상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특별한 영역도 아니고, 애도하며 궁금해야 할 것도 아니며, 금식하고 눈물을 뿌려야 할 것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으로 여기고 소망을 포기하고 한숨 쉬고 눈물 흘리기보다 무덤 저편에서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크게 기뻐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으로 품고 사는 크리스천들이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부활 소망을 확산시켜 가자는 취지로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가 출범했다. 이들은 죽음교육과 해피엔딩의 상·장례, 웰다잉을 넘어 힐다잉(Heal-dying)의 문화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증거를 보여주셨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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