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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마스크 너머 당신 얼굴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내가 ‘쭌’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여섯 살 준우는 인사성이 참 밝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편의점에 들어오면 계산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안녕하세요” 배꼽인사부터 한다. 귀여워 죽겠다. 진열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달걀 모양 초콜릿, 지구 모양 젤리 가운데 뭘 고를까 한참 고개를 갸웃하다 일생일대 결정을 내리고는 카운터 위에 그 결심을 올려놓는다. “쭌, 오늘은 젤리네?” 마스크 너머 배시시 웃는 녀석의 미소가 그려진다. 이뻐 죽겠다.

보조개가 예쁜 손님이 있다. 한 번도 얘기 나눈 적은 없지만 계산 치르고 나갈 때마다 눈웃음 인사 건네며 옴폭 보조개가 들어가는 순간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 손님도, 요즘 당연히, 마스크 쓰고 편의점에 들른다. 늘 사가던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그대로이고, 곁들이던 200밀리 초코우유도 그대로며, 가느다랗게 예쁜 주름 번지던 눈웃음 또한 여전하지만, 보조개는 볼 수 없다. 저 손님, 보조개가 어땠더라?

‘쌍둥이 할아버지’도 떠오른다. 매일 오후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멋진 헌팅캡 쓰고 나타나는 할아버지.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시인이라 하셔도 될 것 같다. “안 돼, 그건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안 돼!” 하면서도 손녀들이 고른 것은 뭐든 다 사주신다. 결국 그렇게 질 거면서, 또 항상 ‘안 된다’ 손사래부터 치시는, 할아버지의 귀여운 태클이란!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없을 것이란 표정으로 쌍둥이 손녀들을 바라보는 그윽한 그 눈빛은 여전한데, 할아버지 자상한 미소 역시 마스크 뒤에 가려 있다.

편의점은 가격 에누리가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좀 깎아줘!” 쌩글쌩글 웃는 구내식당 임 여사님. “원 플러스 원 고르면 되잖아요.” 시큰둥 대꾸하면 “그럼 하나만 가져갈게 반값 받으면 안 될까?” 황소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또 농을 친다. “아―따, 소금 뿌려야것네.” 두리번두리번 찾는 척하면 “나 때문에 액땜했응게 오늘 장사 대박날 것이여.” 고향말로 받으며 키득키득 웃는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던 그 웃음. 까만 얼굴 임 여사, 빨간 루주 그 입술도 마스크 너머 가려 있다. 요즘엔 농담도 잘 않는다.

정 부장님은 저녁 6시쯤 편의점을 즐겨 찾는다. “요즘 장사 잘돼요?” 혼잣말 하는 듯 묻고는 초코파이, 쿠키, 비스킷을 장바구니 가득 담는다. 큼직한 과일 주스도 냉장고에서 꺼낸다. “야근하는 직원들 챙겨줘야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저녁 8시쯤 올 때는 ‘짱구’ 과자를 가방에 담는다. “우리 마누라가 좋아해.” 묻지도 않았는데 사연을 설명한다. ‘새우깡’을 흔들면서는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고.” 취향을 소개한다. 요즘 정 부장은 6시보다 8시에 오는 일이 잦다. “빨리 지나가야 할 텐데요.” 역시 혼잣말처럼 말한다. 뭐가 지나가야 한다는 말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오늘도 싱긋 윙크하며 미소 짓는 정 부장의 따뜻한 격려 역시 하얀 마스크에 가려 있다. 마스크 너머 당신들이 그립다. 벌써 9개월째 보지 못하는 그 미소와 보조개, 구수한 농담, 도톰한 입술들이 그립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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