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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포츠] 안방서 영상찍어 출전… 국제대회 새 길 연 ‘온라인 품새선수권’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 사상 첫 비대면 국제대회 내달 16일 개최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품새 교육을 위해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가상현실(AR)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의 남성 캐릭터가 1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연맹 본부 사무국의 한 탁자를 무대로 삼아 태극 1장 몸통 바로지르기를 시현하고 있다. 이 앱을 활용하면 어느 곳에서든 품새 동작을 배울 수 있다. WT는 11월 16일부터 한 달간 진행하는 온라인 세계 태권도 품새 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성과와 오류를 수집해 개선하고, 이미 개발한 AR과 증강현실(VR) 기술을 향후 온라인 대회에 접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스포츠계가 ‘포스트 코로나’의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을 시작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비대면 국제대회 ‘온라인 2020 세계 태권도 품새 선수권대회’(온라인 품새선수권)를 다음 달 16일에 개최한다. 개최지는 출전자의 안방과 거실, 주변 공터와 체육관이다. 인터넷을 연결한 곳이면 어디서든 출전할 수 있다. 선수 간 경쟁, 심판 판정, 팬들의 관전이 모두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리듬체조·피겨스케이팅 같은 채점 종목에서 도입이 가능하다. 온라인 품새선수권이 ‘코로나 시대’ 세계 스포츠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까.

백절불굴의 태권도, 코로나 극복한다

품새는 태권도에서 힘, 기술, 호흡법, 시선, 동작의 조화를 규격화해 표현성과 정확성을 채점하는 종목이다. 승자는 심판 7명의 채점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뺀 나머지 5명의 평균 점수로 가려진다. 총 10점 만점 중 정확성에 4점, 표현성에 6점을 부여하고 수행 능력에 따라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채점된다. 태권도의 국제화로 품새 기량이 평준화되면서 정확성보다 표현성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품새 국가대표의 점수는 통상 8점대다.

올림픽 경기로 인정된 태권도는 팔과 다리로 상대를 타격한 점수의 총합으로 승자를 결정하는 겨루기다. 품새는 아시안게임과 WT 주관 국제대회에서만 경기로 인정돼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겨루기와 품새의 입지가 달라졌다.

서로의 몸을 밀착하는 겨루기 방식의 태권도는 다른 올림픽 종목과 마찬가지로 7개월 넘게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코스타리카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미주대륙 선발전이 마지막 경기였다.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린다는 전제에서 겨루기 방식의 태권도 국제대회는 내년 초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태권도연맹(WT) 직원들이 19일 서울 중구 태평로 연맹 본부 사무국에서 비대면 국제대회 ‘온라인 2020 세계 태권도 품새 선수권대회’에 활용할 중계방송용 컴퓨터 그래픽 화면을 점검하고 있다. WT는 210개 회원국 태권도인들이 시청할 이번 대회의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T)과 방송 기법을 활용해 시각효과의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품새라면 다르다. 품새에서 개인전은 선수 개인의 수련 성과를 평가하는 경기다. 상대 선수와 마주하고 경기를 진행하는 겨루기와 다르게 경기장으로 모이지 않아도 개최가 가능하다. 품새 국제대회를 온라인상으로 진행하는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WT는 덴마크 세계품새선수권대회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취소한 지난 5월부터 온라인 국제대회 개최를 추진해 왔다. 그렇게 반년에 가까운 준비 끝에 온라인 품새선수권이 성사됐다.

WT 품새위원장인 김중헌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는 “온라인 품새선수권은 한민족의 국기인 태권도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IT(정보통신기술) 저변으로 빚어낸 결실”이라며 “100번을 꺾여도 결코 굴하지 않는 태권도의 백절불굴 정신으로 준비한 온라인 품새선수권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 과제는 경험 축적, VR·AR 도입 계획
출전자와 심판을 가상으로 설정해 제작한 시험방송 화면.

온라인 품새선수권은 출전자가 직접 촬영해 올린 영상을 심판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판은 심판위원장에 의해 선수와 다른 대륙에서 차출된다. 선수와 심판은 모두 일정한 공간으로 모이지 않고 각자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대회에 참여한다. 경쟁 부문은 국가대표급 경기 14개와 가족 및 어린이·청소년이 참여하는 일반부 7개로 나뉘어 있다. WT는 지난 12일부터 예선 출전자 접수를 시작했다. 마감일은 11월 13일이다.

예선 출전자는 11월 16일부터 나흘간 영상을 온라인 품새선수권 공식 홈페이지에 등록해 판정을 기다리게 된다. 경기장에서 열리는 실전 대회는 단 한 번의 기회만 부여하지만, 온라인 대회는 출전자가 가장 완벽하게 수행한 동작 영상을 직접 선택해 등록할 수 있다.

예선 통과자는 11월 21일부터 이틀간 심판진의 채점을 통해 결정된다. WT는 37개국에서 모집한 심판 60명 중 영상 1편당 7명의 심판을 배정해 고득점자를 가린다. 예선 통과자의 영상은 같은 달 23일부터 사흘간 온라인 플랫폼 ‘태권박스 미디어’를 통해 방송된다. 11월 26일부터 12월 5일까지 진행되는 준결승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부문별 최고점자 8명은 결승으로 진출한다. 결승은 앞선 라운드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가대표급에서 자유품새 부문 2개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부문 출전자의 결승은 12월 6일부터 엿새에 걸쳐 매일 밤 9시부터 2시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펼쳐진다. 심판의 채점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나머지 부문의 결승 방식은 이전의 라운드와 동일하게 영상 등록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채점은 12월 11일 하루에 이뤄진다. 올림픽 종목 33개 단체 중 하나인 WT는 이 대회에 G2급 국제대회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G2급은 랭킹 포인트 20점을 받을 수 있는 공인 대회를 말한다. 입상자에게 2022년 경기도 고양 세계품새선수권대회 출전 자격을 부여할 계획도 논의되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첫 대회인 만큼 여러 성과와 오류가 경험으로 축적될 것으로 보인다. 출전자의 영상 촬영 미숙으로 감점 요인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신체의 일부가 영상에서 벗어나면 0.3점, 몸 전체가 사라지면 0.6점을 감점을 당한다. WT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7m를 떨어져 선 뒤 허리띠를 화면 정중앙에 놓고 품새 동작을 시작하도록 출전자에게 권유하고 있다.

조정원 WT 총재는 온라인 품새선수권을 분기별 대회로 확대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WT는 앞으로의 대회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가상(VR)·증강(AR) 현실로 경기장을 구현하고 실시간으로 채점도 이뤄지는 기술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기삼 WT 품새경기담당 과장은 “온라인 품새선수권에 IT·방송 기술을 접목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높은 품질의 시각화를 도입할 것”이라며 “현장과 같은 승리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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