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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했다고 전세 안된대요” 품귀에 집주인 갑질 난무

“세입자 줄 서” 부당 특약도 눈 질끈… “면접 보게 신상 준비하라” 요구도


수도권에서 전셋집을 구하던 30대 A씨는 최근 상상도 못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첫아이를 임신해 무거워진 몸으로 어렵게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한 A씨는 바로 계약하기로 하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집주인을 만났다. 그런데 집주인은 배가 불러 있는 A씨를 보더니 “아이 없는 신혼부부인 줄 알고 나왔다”며 계약을 거부한 채 바로 사무실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수도권에서 전세가 상승과 함께 매물 실종 현상이 벌어지면서 절박한 세입자의 심리를 악용하는 ‘갑질 임대인’ 사례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경기 남부권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40대 B씨는 20일 “전세가 귀하다보니 이제는 임대인이 면접을 보겠다고 하는데, 세상에 이런 갑질이 어디 있느냐”며 어이없어했다.

B씨는 지난 17일 한 집주인으로부터 ‘세입자 면접을 볼 테니 신상내역을 준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내놓은 전세 매물에 6~7명이 계약 의사를 보이자 세입자 조건을 일일이 파악해 읊어 보라고 한 것이다. 이 집주인은 결국 부동산 5곳에 접수된 ‘세입자 면접서류’를 통해 세입자의 가족 사항과 직업, 성격 등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한 사람을 뽑아 계약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특약을 내밀며 동의 각서를 요구하는 집주인도 있다. 수도권의 한 임대인은 전세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서 특약사항으로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지 않으면 위약금 1000만원’ ‘집에 곰팡이 생기면 배상’ ‘실크벽지 들뜨면 배상’ 등을 명기했다. 이 집을 계약한 C씨는 부당한 특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전셋집을 구할 자신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매물을 가진 임대인이 ‘갑’의 위치에 오르면서 매물을 다수 보유한 공인중개사와 그렇지 못한 중개사 사이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통상 전세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의뢰를 각각 받은 부동산이 공동중개하고 수수료를 따로 받아오곤 했는데, 최근에는 매물을 공개하지 않고 ‘워크인 세입자’(사무실 내방 임차인)와 임대인 양쪽으로부터 수수료를 모두 챙기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대인을 등에 업은 일부 공인중개사의 갑질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공인중개사 B씨는 “임대 매물을 많이 가진 부동산이 세입자 의뢰를 받은 부동산에 ‘당신 세입자와 연결해줄 테니 수수료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거나 100만원가량의 고정 수수료를 제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부동산시장의 혼선이 가중되는 와중에도 정부는 좀처럼 정책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임대차 3법 시행과 전세의 월세 전환은 직접적 관계가 없으며, 전세 매물 실종의 핵심 원인은 지속적인 저금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라는 이유 하나로 정책 실패를 설명하려 하는 것은 전세 매물 급감으로 인한 임차인의 고통을 보듬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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