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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이 만든 B급 감성 지자체 홍보 영상

충주시·관광공 유튜브 영상 파격

젊은 세대 문화로 여겨졌던 ‘B급 감성’을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충북 충주시(위부터 1번·2번)와 대구시(3번·4번) 유튜브 영상이 큰 인기를 끈다. 맨 아래 사진은 tvN 예능에 출연한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사과하십쇼! 사과하십쇼! 사과사십쇼!” 충주시 공식 유튜브 영상 중 한 장면이다. 오규석 부산 기장 군수가 군정 질의 도중 “사과하십쇼”를 400번 이상 외친 사건을 패러디하며 신명 나게 흔들다 느닷없이,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사과사십쇼”로 넘어가는 게 포인트다. 알고 보니 충주 특산물인 사과를 홍보하는 영상이다.

한국관광공사의 홍보영상은 파격의 끝이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판소리 수궁가 중 한 구절이 흘러나온다. 전통이 소재라면 한복을 갖춰 입고 비녀 정도는 꽂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들은 한복을 입기는 하는데, 빨간 트레이닝복도 같이 입는다. 이상한 복장을 한 댄서들은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표정엔 미동이 없다. 우스꽝스러운데 왠지 눈이 간다. 잠깐, 이 모든 걸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만들었다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공개한 이 영상들은 홍보 문법을 과감히 탈피한 비주류다. 고급스럽지 않고 고상하지 않은데, 요즘은 이런 감성이 통한다. 지금 세대는 기성세대가 다져 놓은 주류 문화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들의 문화를 차별화하면서 스스로를 ‘B급 감성’으로 정의했다.

온라인에서 B급 감성이 넘실댄 건 꽤 오래전이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열풍의 시초로 본다. 최근 B급 감성이 새삼 화제를 모은 건 딱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지자체 등이 결코 세련되지 않은 신(新)문화를 받아들여서다.

유행보다 형식을, 효율보다 절차를 중요시했던 이들의 변화를 이끈 건 충북 충주시다. ‘홍보맨’으로 불리는 김선태 홍보주무관은 공무원의 방식은 고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산물을 홍보하면서 쓱쓱 아무렇게나 칠한 그림에 ‘믿음, 소망, 사과. 사과는 충주 사과’ ‘고구마계의 호날두’식의 말장난을 더했다. “사과사십쇼”를 올렸던 유튜브도 가관이다. 맥락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현재 구독자는 17만명 이상으로 지자체 중 가장 많다.

최근 대구시도 흐름을 이어받았다. 촌스러운 복장을 한 남성이 대구 사투리로 리듬에 맞춰 덩실댄다. “대구서 나고 자란 통키라 카는데, 동네에 오면 덥다카는데, 대구가 더운 이유 단디 함 들어보소.” 코미디언인가? 그는 대구시 홍보를 담당하는 김병채 주무관이었다.

공공기관까지 강타한 B급 감성은 MZ세대의 문화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초반 출생)와 Z세대(1990년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통칭하는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이들은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을, 소유보다 공유를 중시한다. B급 감성은 ‘꼰대 기피 현상’에서 시작됐다. MZ세대의 반(反)꼰대 문화는 기성세대가 만든 심오함이나 진부함을 멀리하고, 유쾌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형식은 B급을 표방해도 콘텐츠 자체는 A급이다. 의미 있는 메시지를 규정되지 않은 그릇에 담게 되니 오히려 장르 결합을 용이하게 했고, 가벼운 형식을 취하니 속도는 빨라지고 변화와 창조의 문턱은 낮아졌다.

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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