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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멧돼지

오병훈 수필가


가을이 되면서 농촌에서는 야생 동물 때문에 큰 피해를 본다고 한다. 여름에는 익어가는 옥수수밭을 뭉개고 감자밭을 파헤쳤다. 수확 철이 되자 이번에는 고구마밭이며 콩밭을 하룻밤에 다 짓밟았다. 산간 마을에서는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젊은이가 떠난 농촌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마을을 지키는 실정이고 보니 야생 동물의 피해를 앉아서 고스란히 당해야 한다.

옛날에도 멧돼지 피해가 있었던 것 같다. 조선 세종 때 명장 이징옥 장군은 김종서 장군을 도와 함경도 지방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육진을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세서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징옥은 형 징석, 아우 징규와 함께 삼 형제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해 가을 멧돼지가 마을로 내려와 추수를 앞둔 콩밭을 다 뭉개버리고 말았다. 밭에서 슬퍼하는 어머니를 본 형제는 반드시 멧돼지를 잡아 어머니께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활과 창을 들고 산으로 간 형 징석이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칡덩굴에 묶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어도 징옥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 나선 지 사흘째 되는 날 징옥이 송아지만 한 멧돼지를 산 채로 잡아 끌어내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믿을 수 없어 눈만 휘둥그레 바라보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달려왔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이놈이 어찌나 사납게 달려드는지 산 채로 잡느라 늦었습니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도 징옥의 용맹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징옥의 나이 열네 살이었고 형은 열여덟이었다. 이처럼 용감한 삼 형제는 나란히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 일원에서 활약했다. 특히 징옥은 경상, 평안, 함길도 절제사를 역임하면서 국경을 튼튼히 하여 적이 이 땅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어진 임금 옆에는 충신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징옥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나와 산간 마을의 유해동물을 물리쳤으면 좋겠다.

오병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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