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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불면증 자가치료

이원하 시인


약국에 앉아서 약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약국 특유의 씁쓸한 냄새를 맡고 있으면 어쩐지 모든 병이 치료되는 기분이다. 구입하지도 않을 종합비타민과 탈모치료제, 각종 연고를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변의 모든 약을 구경했어도 아직 나의 감기약은 제조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림자 같은 차림새의 한 여성이 약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전부 까만색 천으로 휘감겨 있는 탓에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약국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여성의 숨겨진 표정은 웃고 있는 듯했다. 약사와 안부를 묻지 않고 얘기하는 걸 보니 평소에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둘은 꽤 친해 보였다. 그들의 대화를 살짝 엿들었다. 여성은 자신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떤 약이든 좋으니 치료해줄 약을 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약사는 그 여성에게 자신이 지어줄 약이 아무것도 없다며 대신 조금 바빠지라고 조언했다. 바빠지면 자연스레 불면증이 치료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약사의 의견이 맞다. 나도 최근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오해와 상처 때문에 몇 달을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평소 하루에 8시간은 잠을 자던 사람이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불면증은 너무도 고통스러웠었다. 밤에 잠들지 못하면 낮에라도 자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면증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그랬더니 병원에 가기도 전에 불면증은 깔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벽에 머리만 닿으면 3초 안에 잠들 정도로 치료돼 있었다. 그때 알았다. 바쁘지 않으면 잡생각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을. 불면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워커홀릭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신없이 바쁜 삶이 금전운을 높이고 잡귀를 쫓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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