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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신념, 내가 만든 발복 우상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서울 종로는 요즘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 보행환경 개선공사’가 한창이다. 북촌로와 종로3가~6가 구간이다. 지난 4월 시작된 이 공사는 올해 말에야 끝난다. 보도블록 교체 등이 이뤄지고 있으며 종로구청이 시행청이다. 공사 구간 내에 종로3가의 좌포도청터, 종로4가 로터리 종로성당, 광희문, 가회동성당 등이 순례의 대상이다. 서울에만 3개 코스 45㎞에 달한다. 사대문 안 웬만한 길 모두가 천주교 순례길이다. 2018년 교황청 승인 국제순례지라고 한다. 신앙의 양심을 지키다가 박해와 순교를 당한 이들을 기리는 묵상 코스인 셈이다. 서울 중구 서소문공원이 어느 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교의 템플스테이, 천주교의 성지순례길 사업에는 많은 세금이 투입된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개신교의 한국기독교 역사에 대한 몰인식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천주교 ‘서울 순례 1길’인 명동성당, 을지로2가 김범우 집터, 종로3가 좌포도청터, 광희문 성지, 동대문, 혜화문 등 9㎞ 코스에도 왜 개신교의 역사와 사상, 인물과 문화가 서린 자취가 없겠는가.

명동성당 앞에는 ‘백범일지’에도 거론되는 평안도 출신 이재명이란 기독청년이 1909년 친일파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한 표지석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세웠다. 그는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독립운동가 전덕기 목사와 이회영은 그 명동성당 앞 이회영 집터에서 민족독립을 결의하고 실행하다 고난을 겪었다. 을지로2가 옛 제중원에서는 구휼에 힘쓴 의료선교사들이 있었다.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는 기독교 계열 민족지사들이 희생됐다.

또 6·25전쟁 직후 광희문과 신당동 일대에선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목사이자 의사 이일선이 한센병자 치료에 전력했다. 옛 동대문교회에서 정의와 평화를 배운 독립운동가 김상옥은 일경의 총탄에 효제동 집 근처에서 생을 마쳤다. 혜화동로터리에는 고향 경기 양평에 교회와 기독학교를 설립하고 중국 금릉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인사동 승동교회 전도사로 활약했던 여운형의 피격 사망 표지석이 있다. 이처럼 조선말에서 민주항쟁기까지 개신교가 이바지한 스토리텔링은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그 순교정신과 공동체 장소가 자신들의 행위에 견주어 불편하고 또 교회 건축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애써 모른 척하거나 성장을 이유로 밀어버린다. 그러니 서울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동길 정도가 개신교 순례길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천주교가 ‘숙명의 순교’라면 개신교는 ‘저항의 순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한국교회는 하나님 정의를 향한 피와 희생을 딛고 일어섰으면서도 언젠가부터 웅장한 ‘건물교회’만이 구원인 양 허세 떨다 코로나19 상황을 맞았다. 이제는 어떤 몸부림을 쳐도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는 메타포의 언어로 ‘죽어야만 살 수 있다’. 강단을 차지하려는 열정적인 지도자는 있으나 순례길 맨 끝에 선 지도자가 없어서다. 지금 한국교회 지도자 중 지팡이와 신발 하나가 전부인 영성 깊은 순례자가 있을까.

순례란 성자 예수의 삶을 기리며 인간 내면에 대해 궁극적으로 질문하는 사유의 행위다. 예수를 닮고자 했던 수많은 인물이 욥과 같은 고통 속에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들의 자리를 더듬어 나를 믿음 안에서 다잡는 것이 도보 순례 과정이다. 순례는 목표 지점을 밟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신약 즉 예수의 가르침은 정의 긍휼 믿음이다. 이를 파괴하려는 이념 제도 권력 자본 신념은 우상이다. 이 중 한국교회 사역자와 성도는 무엇보다 ‘자기 신념’이라는 발복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순례길에서 만난 상징물이 우상이 아니라 예수를 그릇되게 믿는 발복을 위한 자기 신념이 진짜 우상이다.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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