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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오늘은 너를 바래다줄게


경남 함양군 안의면 대대리에 ‘바래기재’라는 고개가 있다. 산악인들이 백두대간 능선 진양기맥(晉陽岐脈) 2구간 산행의 끝 지점으로 삼는 곳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거창 마리면이다. 충남 보령에도 같은 지명이 있으니, 요즘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으로 유명한 옥마산 활공장을 지나 성주산 왕자봉으로 이어지는 고개가 또한 바래기재이다. 성주지맥(聖住枝脈) 1구간에 해당한다.

내가 바래기재를 알게 된 건 등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싸리재, 노루목재, 너릿재, 멧둔재, 꼭두방재 등등 우리말 고개에는 개성 강한 이름이 많지만, 유독 바래기재에 끌린 건 이름의 유래 탓이다. 땅의 생김새에서 유래한 다른 지명들과 달리 바래기재는 이름 자체가 한 편의 서사이고 서정이다.

바래기재는 ‘바래다’에서 왔다. 바래주다, 바래다주다. 배웅한다는 그 말. 지금은 등산 날머리나 들머리인 이 고개가 옛날에는 이별의 고개였던가 보다. 남자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면 여인들은 이 고개까지 그를 바래다주었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가 이 고개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앞날을 약속했을 것이다. 대개는 괴나리봇짐을 멘 남자가 먼저 등을 보이고, 여인은 손을 흔들며 그 등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을 테다.

바래기재라는 이름은 이렇게 바래다주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바래다준다는 말에는 ‘바라보다’라는 뜻이 있고,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바래다주는 일의 본질임을 한 번이라도 바래다준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배웅이라는 말이 설령 같은 어원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배웅한다는 말과 바래다준다는 말은 공(公)과 사(私)만큼 다르다. 영어의 ‘see off’나 ‘take’ 같은 말로는 우리말 ‘바래다주다’의 정답고 따뜻하고 환하고 또한 쓸쓸한 느낌을 도저히 전달할 수가 없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만 보면 내 맘이 떨려요. 내겐 그대만 보여요. 바래다주는 길이 좋아요. 우릴 모르는 누구라도 아름답죠. 손을 흔들어 그대 인사해주면 난 그걸로 충분해. 난 정말 행복해.’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그대’는 바래다주는 것과 바라보는 것이 같은 뜻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그대만 보이고, 내 맘은 떨리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름다워 보이고, 그런데 그의 집은 점점 다가오고. 그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쓸쓸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 순간 그 마음.

집이 어디니? 바래다줄게. 오래전 책을 읽다가 이 문장 뒤에서 딱 멈춰 섰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즈음이거나 이미 어두워져 거리의 불빛들이 촘촘히 밝아진 다음이어도 좋으리라. 이 계절엔 너를 바래다주고 싶다. 너의 집 불빛이 보일 때까지만, 그 불빛의 이마 앞에서 내 마음이 놓일 때까지만. 너를 바래다줄게. 우리들의 삶 순간순간이 넘어야 할 첩첩산중인데, 그 들머리 고개가 서로를 바래다주는 바래기재가 된다면야. 그거면 충분하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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