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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김형석 명예교수] “100년 뒤 교회 존속, 기독정신 회복에 달렸다”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펴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갖고 “도산 안창호와 고당 조만식 선생은 국가와 민족을 향한 책임감을 느낀 진정한 신앙인”이라며 “오늘날 기독교인도 민족의 장래와 통일을 걱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100여년 전 기독교는 교육과 의료 봉사로 민족의 미래를 밝히고 3·1운동에 앞장서 민족의 상처를 싸맸다. 도산 안창호와 고당 조만식 선생, 윤동주 시인 등 신앙인 가운데 민족의 선각자가 배출됐다. 지금은 어떤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기독교인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의 비행이 더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6·25전쟁, 경제성장과 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현장을 몸소 겪은 김형석(100)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두란노)를 펴냈다. 2006년 발간한 ‘희망의 약속’을 개정·증보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호텔에서 지난 22일 만난 김 교수는 “100년 전에는 기독교가 국가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사회공동체로서의 기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탄식했다. “귀가 어두워졌다. 큰 소리로 말해달라”고 했지만, 외모와 거동 등은 70대로 보일 정도로 정정했다.


-책을 펴낸 계기가 있을까요.

“100여년 전 3·1운동 당시엔 기독교인이 사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 지금은 기독교의 수준이 지도자 위치에서 떨어지고 중위권으로 내려온 것 같다. 대학 교육을 받은 국민의 수가 늘고 인문·사회과학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 가속화됐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사회학자 한완상은 ‘영락교회가 사회 지도력을 잃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간 사회에 모범을 보인 영락교회가 그렇다면 대부분 교회는 어떻겠는가. 1세기가 지나면 서구사회처럼 교회가 문 닫고, 기독교 정신이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교회가 기독교 정신을 유지하는 데 힘쓰지 못하면, 100년 후 교회에 희망이 없겠다는 염려가 들었다.”

-책 곳곳에서 교회를 향한 교수님의 염려가 묻어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과 일부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 등 최근 한국교회에 여러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교회의 사회적 영역은 전 세계다. 나, 우리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 큰 공동체로 확대돼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게 기독교다. 구한말 미국 선교사들은 교회보다 연세대나 이화여대 같은 교육기관을 세워 인간애를 베풀었다. 교회는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다. 이게 기독교 정신이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주의에 빠지면 모든 사회가 교회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교회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했지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했다. 교회는 역사와 사회를 하나님 나라처럼 바꾸기 위해 있는 것이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부분에 관해 걱정하는 건 교회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존재 이유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교회가 기독 정신을 살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면 100년 뒤에도 남는다. 하지만 목회자 등 교회를 주관하는 이들이 교회만 잘 키우면 기독교는 그걸로 끝난다.”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해선 ‘교회주의’ ‘교권주의’ ‘진리가 아닌 교리주의’를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종교는 본래부터 권위를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권위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이 권위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게 기독교적 권위다. 예수님은 계명과 율법을 버리라고 했다. 지금은 교회가 교리를 붙잡는다. 교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해졌는지 모른다. 내가 중학생 때 교회에선 ‘주일에 공부하면 죄’라고 해서 일요일 자정을 넘긴 뒤 공부했다. 얼마나 큰 잘못이냐. 교리를 진리로 바꿔야 한다. 교회가 ‘교회주의’와 ‘교권주의’에 빠지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신앙적 양심을 가진 인물로 도산 안창호와 고당 조만식 선생을 들었습니다.

“두 분이 존경스러운 점은 마음의 그릇이 컸다는 것이다. 당시 적잖은 목사들이 복 받는 설교를 주로 했는데, 도산과 고당 선생은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했다. 국가와 민족을 향한 책임감을 느낀 진정한 신앙인이었다. 교회주의를 멀리하고 하나님 나라를 목적 삼은 분들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도 이처럼 민족의 장래와 통일을 걱정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북쪽에 살다 1947년 탈북했다. 탈북자 인권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은 통일을 말할 자격이 없다. 우리의 이웃인 북한 동포의 인권에 대해 사명감을 느끼지 못하는 기독교인보다 여기에 책임감을 느끼는 비기독교인이 더 낫다. 교회 간다고 다 기독교인이 아니다. 정직하게 이웃을 위하는 게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다.”

-“공부하는 교회가 박수하는 교회보다 희망적이며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가 교리를 강조하는 교회보다 기독교적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도 인상 깊습니다.

“한때 신학 공부를 하며 든 생각은 ‘신학이 참 좋지만, 마음의 그릇이 커지긴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여러 지식이 있어도 독보적으로 빛나는 게 진리다. 주변 지식은 아무것도 없이 말씀만 있다면 진리가 못 된다. 기독교인이 종교문제 포함해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고, 학교 공부보다 독서를 많이 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품어야 한다.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신앙도 가질 수 없다. 내 속에 진리가 없고 교리만 남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한국교회가 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해야 할까요.

“사회에 교회가 이바지한다는 생각보다는, 기독교인이 모범을 보이자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신앙인을 본받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자.”

-낙태와 동성애 등 생명 관련 최근 쟁점에서 기독교는 대체로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중간에 산다. 될 수 있는 대로 인격의 존엄성과 가치를 위해 선한 방향으로 가는 것, 이것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창조와 재림, 구원을 이야기하는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이자 역사의 목표를 찾아가는 종교다. 사람의 인격과 행복, 존엄성을 위해 어느 방향이 좋을지를 찾아가는 것이지, 한 사안을 두고 좋다, 나쁘다를 결정짓는 건 아니다.”

-그간 장수 비결로 일, 운동, 식사습관 등과 함께 ‘60~90세 인생계획 설립’을 꼽았습니다.

“30대엔 배우고 60대엔 직장에서, 90대엔 사회인으로 책임을 감당하자는 이야기다. 살아보니 사회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때는 60대 이후였다. 소명의식을 지닌 기독교인에겐 정년이나 은퇴가 없다. 기독교 신앙은 ‘이웃 사랑’이란 사명감을 준다. 이웃에 관한 사명이 없으면 신앙인이 아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젊을 땐 먼 미래의 계획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생애 마지막을 알차게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한다. 거창한 계획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겠다는 마음, 이것이 기독교인의 인생관 아닐까.”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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