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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봄 저녁에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이가 은퇴하고도 늘 바깥일이 있었는데
지난 사흘째 도무지 말을 않고 집에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문 나서자마자 넘어졌다지만 다친 데는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병원에 가봐야지요.’
‘병원 얘기만 비쳐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합니다.’

나도 화가 나서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은 적 있었지.
그 하루 온통 하나의 절벽이었어.
하, 어이없이 주저앉는 자신에게 그가 단단히 화났구나.
그동안 있는 힘 없는 힘 다 내 쓰고
봄이 와도 물오르지 않는 마른풀 된 게 못 견디겠는 거지.

‘혹시 혼잣소리를 하지는 않습니까?’
‘영 입을 열지 않습니다.’
‘내가 가도 좋으냐고 물어보십시오.’
‘전화하는 소리 듣고 벌써 머리를 흔듭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한 사나흘 입 떼지 않고 산 적 있습니다.’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 중

노시인은 퇴직한 친구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이어지는 대화는 환자 가족과 의사의 대화처럼 읽힌다. 문답을 하다 보니 친구의 증상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 넘어져 다친 데는 별로 없었어도 어이 없이 주저앉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예전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지 마음을 다잡고 하는 마지막 말은 서글픈 처방전처럼 들린다. 1938년생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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