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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생명력 질긴 부패와 싸워 왔나

[책과 길] 반부패의 세계사, 김정수 지음, 가지, 380쪽, 1만7500원

‘반부패의 세계사’는 ‘위임된 권력의 사적 남용’이라는 부패에 저항한 인간의 역사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왕과 귀족이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중세의 믿음은 근대로 오면서 점차 무너진다. 왕과 왕실은 법의 통제를 받는 상징적 입헌군주의 지위로 밀려나고, 왕실 경비는 의회의 승인을 받는 등 공공의 감시를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태국에서 거세진 반정부 시위 역시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군주제 개혁’은 400억 달러(약 45조8000억원)로 추정되는 왕실 자산에 대한 공공 감독 강화, 왕실 모독죄 폐지 등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가 분출된 것이다. 사진은 지난 18일 밤 태국 방콕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의 모습. AP뉴시스

“18세기 영국에서 부패는 때때로 히드라에 비유되었다. 계속해서 목을 쳐도 다시 새로운 목이 자라나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괴물처럼 부패는 아무리 처벌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부패의 세계사’는 부패의 질긴 생명력 못지않게 이를 근절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역시 가없이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고대에서 현대, 동양에서 서양에 이르기까지 부패에 저항한 인간과 그 인간들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포괄적 기록이다. 공공감사, 회계감사, 옴부즈맨, 선거, 언론, 정보공개, 내부고발 등 권력의 내외부에서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던 인류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소개한다.

안으로부터의 감시

인류 최고(最古)의 부패 기록은 기원전 24세기 점토판에서 볼 수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나시리야 지역에서 발굴된 이 점토판에는 부패에 저항한 개혁가 우루카기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패에 저항한 기록을 통해 부패가 존재했음을 간접 확인한 것이다. “부패와 관련한 인류문명의 첫 기록은 부패를 저지른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닌 부패와 맞서 싸운 기록”인 셈이다.

우루카기나는 전제왕권을 가진 왕으로 뇌물 수수 공직자 파면, 사제 특권 박탈, 장례비용 축소 같은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다. 그의 등장 후 변화에 대해 점토판은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만약 상급자가 평민의 옆집에 살면서 그에게 ‘내가 너의 집을 사겠다’라고 말하면 그는 ‘나에게 적절한 가격의 은을 내시오’라고 말하거나 ‘같은 양의 보리로 지불하시오’라고 말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 평민이 집을 팔지 않기를 원한다면 상급자는 그에게 집을 팔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개인의 자비에 기대지 않고 제도적 감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확인 가능하다. 13세기 이탈리아 자치도시들은 도시를 경영하는 ‘포데스타’(도시장관)를 다른 도시에서 초대해 통치를 위임했다. 특정 파벌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포데스타에 대한 감시 장치도 마련했다. 포데스타는 일종의 보증금을 기탁한 후 임기 중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또 임기가 끝난 후에는 부정한 행위가 없었는지 ‘신다코’로 불린 감사관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했다.

권력 내부에서 상시로 권력을 감시하고 고충을 처리하는 오늘날 ‘옴부즈맨’의 등장에는 이슬람의 영향이 놓여있다. 옴부즈맨을 도입한 스웨덴의 칼 12세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터키로 망명한 후 ‘까디’(최고재판관)와 ‘마잘림’(고충위원회)의 활동을 보게 된다. 칼리프로부터도 독립된 지위를 인정받는 까디, 통치자나 대리자에게 직접 피해를 호소할 수 있게 한 마잘림을 통해 옴부즈맨을 착안하게 된다. 여기에 고국에 대한 ‘대리 통치’의 필요성까지 더해지자 칼 12세는 1713년 10월 ‘최고 옴부즈맨’ 설치 칙령을 내린다. 칼 12세 사후 유명무실해진 옴부즈맨은 1809년 스웨덴에서 법률에 따라 부활한다.

이밖에 회계감사의 필요성이 높아진 계기가 된 영국의 ‘남해회사 거품사건(South Sea Bubble)’, 매표 행위 근절을 위한 정치권의 선거비용 제한과 비밀선거 도입 등 선거제 변화 과정도 다룬다. 이중 1887년 회계사가 책무 불이행으로 첫 법적 처벌을 받은 사건의 유죄 이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회계사의 의무는 단지 대차대조표의 산술적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의무는 대차대조표의 실질적인 정확성을 검토하고 대차대조표가 회사의 운영 상태를 진실하고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바깥으로부터의 감시

책은 언론, 정보공개제도, 내부고발을 통해 권력 외부에서 권력의 부패를 감시해온 과정도 들여다본다. 이중 정보공개제도는 초기 제도 도입 과정에서 편향된 정보가 중요한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세계 최초의 정보공개법인 ‘언론과 출판의 자유에 대한 폐하의 관대한 조례’가 제정된 1776년 스웨덴은 중국(당시 청나라) 문화에 경도돼있었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들어온 도자기, 차, 비단은 물론이고 집안의 가구들조차 중국식으로 꾸며지기 일쑤였다. 프랑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한 ‘중국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같은 당대 유럽 지식인들도 이 책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문제는 편향성이었다. 중국이 언로가 자유롭고, 중앙 정부에서 발행한 일종의 관보(경보)가 정부 정책을 투명하게 알리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의도적인 정보의 취사선택으로 더욱 왜곡됐다. 출판·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스웨덴 정치인 노던크란츠는 경보가 황실의 검열을 받았다는 내용은 누락한 채 자신의 책에 긍정적인 내용만 기술했다. 노던크란츠의 책은 정보공개법 도입을 주도한 안데르스 쉬데니우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쉬데니우스는 “중국과 같이 언론과 정보의 자유가 주어지면 어떤 왕국도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제도 도입에 큰 역할을 한다.

내부고발은 내부에서 잘못을 드러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바깥을 향한다는 점에서 경계에 놓여 있다. 그만큼 당사자에겐 위험부담이 크다. 그런 점에서 관련 제도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돼왔다. 책은 1777년 포로들을 비인간적으로 고문한 상사를 고발했던 미국 군인을 비롯해 베트남전 미라이 학살, 워터게이트 사건에서의 ‘딥 스로트’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 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도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까지 권력과 조직에 저항한 이들의 저항기도 그리고 있다.

책은 마지막 장에서 전세계적인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투명성기구의 발족 과정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국내에서 반부패 관련 기구가 정착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반부패국민연대(현 한국투명성기구) 실무자로 참여한 저자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비서구 국가들의 권한과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점, 부패인식지수의 불완전성, 기구 자체의 독립성 훼손 같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반면 저자가 책 끝부분에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정부의 투명성과 관련지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부분은 성급한 느낌을 준다. 코로나19가 진행형인 데다 개인 정보 노출 및 기본권 제한 문제 역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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