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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결속은 인간의 본능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고전이다. 역사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문학은 언제나 그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기술하는 역할을 해왔다. ‘페스트’의 장면들은 현재의 기록처럼 생동감이 넘치지만, 1941년 카뮈가 오랑에서 목격한 역병은 페스트가 아니라 티푸스였고, 카뮈는 전염병으로 전쟁을 은유하려는 의도 또한 있었다. 게다가 페스트는 유사 이래 종종 유행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작중 오랑에서 유행한 페스트는 인간이 겪은 수많은 전염병의 역사 중 일부다. 하지만 유독 카뮈의 ‘페스트’가 가장 많이 회자된 이유는 그 내용이나 구조에 있어 현 시대를 가장 적확하게 반영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는 너무 잘 짜여 카뮈의 다른 작품과 이질적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다. 역병이 발견됐음에도 은폐하려는 당국자, 봉쇄된 도시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다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군중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마치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고 기술하는 것 같다. 주요 인물들 또한 사회적 층위를 정확히 대표한다. 그들은 의사, 기록자, 기자, 신부, 공무원, 판사 등의 시선으로 전염병을 마주하며, 이들이 합심해 보건대를 구축해서 역병과 맞서 싸우는 것이 소설의 뼈대다. 그들은 카뮈의 의도대로 관계를 맺고 과거를 고백하거나 사상을 전개하며 누군가의 죽음을 견딘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을 맡은 인물은 의사 리외다. 병마와 싸우는 내용이기에 의사가 주인공인 것은 자연스럽지만 성실한 의사로서 역병과 맞서 싸우는 심리가 소름돋게 정확하다. 리외는 처음부터 숭고함으로 의업을 시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괜찮은 일이고 노동자의 자식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이 자리에 있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을 목격하고 그는 달라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리쳐 거부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끔찍한 환자를 본 뒤, 그는 절대로 이 일에 익숙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이 올지 몰라도 그들을 고쳐줘야 한다고, 힘이 미치는 때까지 그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는 아내와 생이별했음에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보건대를 조직해 사람들을 구한다. 노동의 성실함과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 페스트로부터 승리하는 길이라는 냉철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어린 아이의 비참한 죽음에 가장 크게 절규하고 신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도 그이고, 사랑 앞에서 인정을 발휘하는 것 또한 그이다. 영웅주의란 없으며, 역병과의 싸움에서 승리란 일시적인 것이고 우리에게는 ‘끝없는 패배’가 있을 뿐이라고도 말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맞서 싸운다. 독자들은 ‘인정이 없다’는 말을 듣는 그가 누구보다도 더 인간들을 사랑하고 영웅적으로 질병에 맞서는 인물임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이번 팬데믹에서 의료진은 줄곧 영웅에 비견됐다. 하지만 의료진은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소에도 병과 죽음을 돌보는 것이 업인 사람에게, 전염병은 위험할지라도 내가 맡은 일이라 해야 하는 것이었을 뿐, 영웅이라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냉철하고 무덤덤한 리외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털어놓다가 감정적으로 변모해 슬픔을 분출하는 장면은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다. 결국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영웅적인 것이다.

역시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독서 축제에서 패널들과 페스트를 주제로 대담할 때였다. 진행자는 소설에서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 보건대를 구축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물었다. 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소수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하지만 다른 패널은 위기를 맞아 이질적인 집단이 결속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두 가지 말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결속했던 것은 결국 평범한 우리가 서로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평범한 사랑 또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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