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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개혁 후퇴시킨 민주당의 무공천 번복, 유감스럽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치러지는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책임 있는 정치 실현을 위해 ‘무공천’ 규정을 당헌에 도입했던 취지를 무색게 하고, 정치 개혁을 뒷걸음질치게 하는 결정이다. 매우 유감스럽다. 다른 정당들에 나쁜 선례가 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민주당은 29일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한 뒤 해당 당헌을 개정할지 여부를 전 당원 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당원 투표로 찬반을 묻는다지만 당원들 분위기는 후보를 내자는 의견이 우세해 당헌 개정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민주당의 당헌 제96조 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 구성된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만든 것으로, 당시 이미 있던 무공천 조항을 더 강화한 것이다. 기존 조항에서 ‘부정부패 사건’으로 한정돼 있던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했고, 권고 규정이던 조항도 의무 규정으로 강화했다. 이런 취지에 비춰 볼 때 민주당의 이번 결정은 공천의 책임성 문제를 불과 5년여 만에 후퇴시킨 셈이다.

이낙연 대표는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헌에 명시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논리는 궤변에 가깝다. 당헌을 지키는 게 유권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자기중심적 발상에 불과하다. 당이 공천했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궐위로 초래된 시정 공백도 문제지만, 보궐선거 비용으로 800억원 넘는 세금이 또 들어가는데 기어코 후보를 내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양대 도시 행정수장 선거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위기일수록 대도를 걷는 게 올바른 정치다. 계산속으로 당헌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전형적인 기회주의 행태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을 준 국민 앞에 취할 도리가 아니다. 이번 주말 당원 투표가 실시된다니 긴 안목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다면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일관된 원칙과 명분을 택하는 큰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의 실망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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