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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낀 ‘쓰레기 브로커’ 활개… “처리에 1000억” [이슈&탐사]

[값싼 쓰레기 정책의 역습] ③ 쓰레기산의 비밀


파주삼릉은 조선시대 왕릉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동쪽으로 직선거리 1㎞를 내려가 보면 온갖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곳이 나온다. 환경부 추산 2만t 분량의 불법 폐기물, 일명 ‘쓰레기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연내 처리를 지시했던 곳 중 하나다.

지난 20일 해당 지역을 찾았다. 쓰레기산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 공단 인근 사유지에 있었다. 98번 지방도에서 불과 10m 떨어졌고, 펜스로 둘러놔 안이 보이지 않았다. 입구 철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문틈 사이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보였다. 폐합성섬유부터 비닐, 플라스틱, 고무 등 온갖 것이 뒤엉켜 있었다. 대통령 지시에도 이곳 쓰레기는 그대로였다. 문을 두드리자 관리인이 나와 “이럴 줄 모르고 업자에게 땅을 빌려준 것뿐”이라고 했다.

지자체는 투기범에게 쓰레기를 치우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투기범은 이미 수익을 빼돌려 무일푼 상태로 교도소에 있다. 치울 여력이 안 된다며 버티는 중이다. 이들은 조직폭력배가 낀 전문 폐기물 투기 브로커 세력이었다.

지자체는 토지 소유주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는데, 당사자는 “내가 버린 게 아닌데 왜 치워야 하느냐”며 취소소송 중이다. 소송 중에는 지자체가 자력으로 치우고 추후 비용을 청구하는 행정대집행 진행이 안 된다. 이곳을 치우는 데는 30억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확인한 전국 쓰레기산은 356곳 152만1494t 분량(지난 8월 말 기준, 중복 지역 제외)이다. 불법 투기를 엄단해도 좀체 줄지 않는다.

불법 투기 부추기는 왜곡된 구조
지난 20일 방문한 경기도 파주 장곡리 쓰레기산 모습. 높은 울타리를 둘러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쓰레기산이 위태로운 자원순환 시스템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폐기물 순환의 마지막 과정은 소각 또는 매립 등의 ‘처리’다.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은 태우고, 잔재는 땅에 묻는다. 소각 없이 바로 매립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각장과 매립지가 사실상 포화 상태다. 폐기물은 매년 급증하고 있고, 중간 단계의 재활용 수거 및 선별 역량은 떨어진 상태여서 처리해야 할 폐기물이 더 쌓이는 악순환 고리도 형성돼 있다(국민일보 10월 22·28일자 1면 등 참조).

당연히 비용이 뛴다. 2018년 18만6000원이었던 t당 소각 비용은 지난해 26만원으로 올랐다. 폐기물 품질이 좋았을 때가 이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태우기 어려운 게 섞여 있으면 30만~40만원을 줘도 안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폐기물은 매립장으로 가야 하는데 매립비용은 8만원에서 14만원으로 75% 증가했다. 올해는 더 올랐다. 그 틈을 파고든 게 브로커다. “싸게 처리해 주겠다.”

정상 처리비용은 ㎏당 180~190원 하는데, 장곡리 브로커들은 100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80~90원 정도 마진이 생긴다.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업자로선 t당 8만~9만원, 2만t이면 16억~18억원을 아낄 수 있으니 구미가 당긴다. 거래를 용인하는 순간 브로커 일당은 순식간에 2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정식 처리비용의 50~60%를 받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혼합폐기물 처리비용은 25t 트럭 1대에 300만원인데 150만원만 받고 투기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재활용 업체들 입장에선 처리비용이 커질수록 불법 투기세력과의 결탁 유혹도 커진다. 거꾸로 마진이 크면 클수록 불법 투기세력의 범죄 수익이 높아진다.

내부자들의 공모
전국 불법 쓰레기 산 위치를 나타낸 지도. 환경부가 적발한 내역을 바탕으로 국민일보가 제작했다. 빨간색 점은 불법 투기된 쓰레기산, 파란색 점은 방치된 쓰레기산, 초록색 점은 수출된 쓰레기산을 나타낸다.

국민일보는 쓰레기산 형성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대법원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 올라온 폐기물관리법 위반 사건 중 지난해 1월 이후 확정 판결이 난 55건을 전수 분석했다. 불법 투기는 대부분 브로커가 낀 집단범죄 형태로 나타났다.

투기에는 4~5명의 공범이 등장했다. 일명 ‘선수’로 불리는 브로커 리더는 투기할 장소를 물색하고, 폐기물 처리에 곤란을 겪는 업체와 접촉해 파격적인 단가를 제시한다. 이후 폐기물 처리 자격을 갖춘 바지사장 명의로 투기 장소를 임대한다. 대개 밭이나 산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인적 드문 곳이다. 놀리던 곳이니 토지주는 별 의심 없이 빌려준다.

폐기물 운반 트럭 기사, 임대 토지에 상주할 부지 관리인도 섭외된다. 부지에 담장 설치가 완료되면 곧 야밤 투기가 이뤄진다. 장곡리 브로커들은 트럭 기사에게 “30만원을 주겠다. 대신 불법이라 주변을 경계하고 라이트도 끈 상태에서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불법 투기는 선별 업체, 재활용 업체, 이들과 거래하던 운반업자 등 폐기물업계 내부자들이 자연스레 공범이 되는 구조였다. 이는 업계에서 ‘불법 투기가 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도의 한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폐기물이 좀 쌓이는가 싶으면 브로커들이 귀신같이 연락해 온다”고 했다.

55건 사례에서 브로커가 받은 최대 형량은 징역 3년6개월이었다. 벌금은 수백만원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상당수는 범죄수익 추징도 어려웠다. 거래가 현금으로 이뤄지고, 투기는 대체로 뒤늦게 발각돼 수익을 이미 빼돌린 경우가 많아서다.

찾아내도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산

쓰레기산은 방치 형태로도 나타난다. 폐기물 업체 업장에 수년간 쌓아만 두는 경우다. 환경부가 지난해 2월 조사한 전국 쓰레기산 235곳 중 방치형은 55곳이다. 지난 8월 기준 새로 생긴 쓰레기산 127곳 중 23곳도 방치였다.

지자체는 폐기물 방치 업장에 행정명령을 내리는데, 이게 불법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립 운악산자연휴양림 인근 쓰레기산 사례가 그렇다.

지난 20일 운악산 인근에 남아있는 쓰레기 더미.

휴양림 정문 남쪽 길을 따라 1.5㎞를 내려가면 300t 분량의 쓰레기 언덕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엔 본래 4500t 분량의 불법 폐기물이 있었는데 포천시가 행정대집행으로 4200t을 처리했다. 환경부는 이 쓰레기산을 모두 처리했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지난 20일 방문했을 땐 콘크리트와 비닐, 쇠파이프, 전선 등이 쌓여 있었다. 부지 외부 차양도 그대로였다.

시 관계자는 “남아 있는 쓰레기들은 부피가 커 소각장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곧 업체를 선정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포천시는 폐기물 처리에 12억5000만원을 썼다.

투기범은 남양주시 폐기물 재활용 업체 사장 A씨였다. 업장 폐기물이 허용 범위를 넘어서자 시는 치우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는 운악산 기슭 부지 소유주와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폐기물을 옮겼다. 토지 매매 계약은 2억4000만원이었는데, A씨는 계약금과 중도금 9000만원만 지급한 상태에서 쓰레기를 버렸다.

지자체 관계자는 “폐기물을 보낼 데가 없다 보니 업장에 쌓아두다 의도치 않게 방치 폐기물 업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며 “브로커들은 폐기물 상태를 가리지 않고 싼값에 처리해주겠다고 하니 업주가 끝까지 내몰리면 어쩌겠느냐”고 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받은 환경부 자료를 보면 불법 투기 업체는 2017년 60곳에서 지난해 123곳으로 늘었다. 박완주 민주당 의원실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폐기물관리법 위반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인원은 2015년 789명, 2016년 1067명에서 지난해 1862명으로 급증했다.

세금으로 치우는 쓰레기산

각 지자체가 행정대집행으로 처리 중인 쓰레기산은 전국 96곳, 85만3676t에 달한다. 경북 의성 쓰레기산 4개 반 분량이다. 이 가운데 16만8808t에 대한 구상권이 청구됐는데, 가액만 127억7000만원이다. 대금을 못 받으면 최소 645억8000만원의 혈세가 사라진다.

그런데 현장에선 구상권 대금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행정대집행을 진행했다는 건 애초 투기자와 토지 소유주 모두 치울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는 얘기여서 징수할 수 없을 것”이라며 “85만t을 전부 치우면 처리 비용이 1000억원을 가뿐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지자체 폐기물 담당자는 “브로커들은 땅을 임대받은 뒤 처음엔 임대료를 잘 주다가 순식간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째’버린다”며 “토지 소유주가 개인이면 수억, 수십억원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한순간 파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한 경우 자살할 것 같아 건드리지도 못하는 토지주들이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재량이 없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에서는 50억원을 들여 2만2000t가량의 불법 폐기물을 행정대집행으로 처리했다. 해당 부지를 제공한 건 지역 철강 업체다.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 업체 입장에서 50억원을 맞으면 회사가 공중분해돼 부도가 날 상황이다. 업체 입장에선 날벼락을 맞은 것”이라고 했다.

이슈&탐사1팀 파주, 포천=임주언 박세원 기자, 전웅빈 문동성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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