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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근의 세금이야기] 반세기 성실 납세 있었기에 경제 발전… 정부는 무한 감사해야

조용근 사외 논설위원·전 한국세무사회장


2000년 당시 전국에서 세수 규모가 제일 큰 서울 영등포 세무서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일이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관내 사업자 한 분이 몹시 화난 표정으로 내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서장님, 제가 범죄인입니까. 뭘 잘못했다고 세무서에서 이렇게 저를 못살게 합니까.” 막무가내로 거칠게 항의하는 것이었다.

겨우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영등포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철강 판매 사업을 해왔으며 사업이 제법 잘돼 10억원 정도의 각종 세금을 내는 등 성실하게 납세 의무를 잘 이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2년 전 거래처의 부도로 갑자기 자기 업체도 연쇄 부도가 나게 돼 세금도 못 내게 됐다. 담당 세무서가 그동안 납세 의무를 잘해온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린 체납세금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처리, 더 이상 사업을 재기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으니 이럴 수 있느냐고 항변하는 것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그때 주저할 것도 없이 관할 세무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잠시 생각해 봤다. 바로 민원실장을 불러 임시방편으로 세무서 1층 민원실 옆 귀퉁이에 칸막이를 치고 책상 하나 놓아주게 했다. 그리고 불편하더라도 세무서 주소를 사업장으로 해서 명함도 만들고 다시 사업을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민원실장에게도 그런 사연을 들려주면서 우리 세무서가 지원할 일이 있으면 어렵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했다.

그리고 일련의 조치들을 직속 상관인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도 보고했다. 사업을 열심히 잘해서 세금도 잘 내다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부도로 세금을 내지 못해 불성실 납세자로 낙인찍히면 이는 분명 불공평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필자는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 납세자의 뒷일이 어떻게 됐는지를 한동안 알지 못했다. 훗날 그 사업자가 기사회생해 밀린 세금도 다 냈고, 지금껏 사업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별것 아니지만, 그 납세자에게 해준 일련의 임시 조치들에 대해 지금껏 자긍심을 느낀다.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잘 내준 납세자가 어디 이 사람뿐이겠는가. 한때 공직에서 세금 업무를 맡은 이로서 납세 의무를 정확히 지키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1966년 3월 3일 국세청이 발족한 이후 우리 국민의 높은 납세 의식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런 고마운 뜻을 기리기 위해 정부는 매년 3월 3일을 ‘납세자의 날’이라고 특별히 지정했고, 각종 세금을 성실하게 잘 내는 사람들을 ‘모범 납세자’로 선정한다. 하지만 그분들 못지않게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모든 납세자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십 년간 매년 거둬들인 세금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어떻게 급성장해 왔는지를 살펴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경제적 기적을 되새겨봐야 한다. 세금은 거두는 기관에 따라 구별된다. 국세청에서 거두는 세금은 국세(National Tax)이며, 시·도와 시·군·구에서 거두는 세금을 지방세(Local Tax)라고 부른다. 국세청이 발족한 1966년 당시에는 그해에 거둬들여야 하는 국세 징수 목표액을 700억원으로 정했다. 세금 700억원을 잘 확보하기 위해 국세청장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 번호도 700번으로 정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나라 세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국세청이 발표한 2019년 한 해 동안 거둬들인 세금 액수는 무려 293조4543억원이나 된다. 이 수치는 국세청으로 처음 발족할 때인 1966년의 700억원에 비해 무려 4192배가량이나 늘어난 엄청난 규모다. 이 수치를 보면서 누구나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가 반세기가 지나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물론 당시 1년 내내 전국적으로 거둬들이겠다고 목표했던 700억원은 지금의 물가상승률과 화폐가치로 따지면 상당한 차이가 있긴 하다. 현재 웬만한 대기업 한 곳에서 납부할 정도의 크지 않은 규모다.

어쨌거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엄청나게 많이 커졌음에 틀림없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좁은 땅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기적의 역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외람되게도 필자는 1966년 국세청이 처음 문을 열 때 20세 어린 나이로 개청(開廳) 요원으로 들어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세 공직자로 일하는 영광을 맛보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과정을 세금 현장에서 눈여겨봤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겪어온 지난 반세기는 분명히 기적의 역사였다고.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납세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무엇보다 지난 54년 동안 모든 국민이 매우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잘살아보자고 외치면서 열심히 노력해 왔다. 모든 납세자와 과세 당국이 힘을 합해 이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다. 여기에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 보아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선진 세제와 탁월한 세원 관리 시스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역시 우리 대한민국 납세자의 힘은 위대하다.” 이런저런 세금 문제로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는 전국의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무한히 감사해야 한다.

조용근 사외 논설위원·전 한국세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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