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여의춘추-손병호

[여의춘추] 다시 마이크 잡는 유시민

손병호 논설위원


얼마 전부터 여권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치를 안 하겠다던 마음을 바꾼 것 같다는 소문이다. 복수의 여권 인사들이 비슷한 얘기를 했다. 소문의 진위가 궁금해 최근 유 이사장을 잘 아는 친문재인계 핵심 인사한테 그 얘기를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답이 의미심장했다. ‘우리도(친문계도) 유 이사장이 마음을 바꿔주길 바라고 있지만 알아봤더니 마음이 전혀 바뀌지 않았더라’는 답이었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인보다도 ‘우리도 바꿔주길 바라고 있다’는 그 대목에 귀가 쫑긋해졌다.

친문 또는 친노무현계는 아직 지지할 대선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국무총리,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잠재적 후보들이지만 당 경선 때 영향력이 가장 큰 친문계의 낙점을 받아야 하는데, 친문계가 여전히 관망 중이란 얘기다. 특히 친문계가 요즘 자체 싱크탱크를 준비하고 있는 것 역시 예사롭지 않다. 대선을 앞두고 슬슬 세력화에 나선 것일 수 있어서다. 그 세력화를 통해 내년에 어느 한 후보를 낙점하는 순간 그 후보가 사실상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와중에 유 이사장이 6일부터 알릴레오 시즌3인 ‘알릴레오 북스’를 통해 유튜브 방송에 컴백한다. 알릴레오 시즌1과 2가 휘발성 높은 정치, 사회 현안을 다룬 것이었다면 시즌3은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 안내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1회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유 이사장은 방송을 앞두고 “진짜 책 이야기밖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런데 정말 책 이야기만 하려는 목적일까. 아닌 것 같다. 알릴레오 북스가 유 이사장의 정치 복귀 로드맵의 일환일 수도 있으리라 본다. 유 이사장은 현안에 대한 빠른 이해력, 핵심을 찌르는 논거로 상대를 설득시키는 능력,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이는 추진력, ‘4·15 총선 범여권 180석’을 맞춘 것 같은 뛰어난 판세 읽기, 실세 장관 시절 보여준 장차관들 휘어잡기 등 정치 지도자로서 장점이 많은 인사다. 하지만 장점을 다 깎아먹을 치명적인 단점도 갖고 있다. 싸움닭 이미지, 반대파에 대한 독설, 적대감 부추기기, 깐죽거리는 어투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알릴레오 북스를 통해 ‘교양’을 뽐내고 품격 있는 태도를 되찾는다면 그런 부정적 이미지들을 상쇄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더 나아가 방송에서 다루는 책들에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다음 대선에서 화두가 될 ‘시대정신’을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미지를 좋게 바꿔나가고 시대정신도 찾아낸다면 불펜에서 나와 마운드로 올라가라는 친문계의 목소리가 더 커질 테다.

지금 선두주자인 이낙연 대표나 이 재명 지사가 실수를 하거나 친문 진영과 감정적 시비에 휩싸인다면 친문은 결국 자기 진영의 적자를 등판시키려 할 것이다. 요즘 두 유력 주자가 친문과 코드를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코드가 ‘태생적으로’ 같은 것과 ‘노력해 맞춰지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향후 현 정부와의 차별화 과정에서, 이 지사는 친문과 붙었던 ‘옛 앙금’ 때문에 언제든 충돌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다른 주자들이 실수를 하지 않고, 시비가 붙지 않더라도 친문은 자기 진영 사람을 내세우려 할 수도 있다. 노무현정부, 문재인정부를 계승해 다음 정부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가치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주자로 내세워야 한다는 명분에서다.

김경수 지사가 친문과 친노계의 핵심 멤버이긴 하나 아직 인지도나 경쟁력이 약해 이 대표와 이 지사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친문이 유 이사장의 행보에 계속 관심을 쏟는 것도 김 지사가 여의치 않으면 유 이사장을 대선 경선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설사 유 이사장이 직접 주자가 되지 않더라도 친문·친노의 대주주인 만큼 여권의 킹메이커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하든 ‘유시민 변수’가 향후 대선 판을 요동치게 할 텐데, 기왕이면 품격 있는 모습으로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그가 나섰다 하면 나라가 조용한 때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알릴레오 북스를 계기로 독설과 편가르기, 적대, 경박함과는 아주 결별하길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